[서평] 채수아 작가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일'
12월의 첫날,
운이 좋게도 채수아 작가님의 신작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선착순 서평단에 선정되었습니다.
브런치 작가님의 신작을 처음 마주한다는 설렘으로 책이 배송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살금살금 눈이 내리던 12월 13일 토요일, 괜히 수줍은 마음으로 책을 받았습니다.
가벼운 기대감과는 다르게, 채수아 작가님의 일생을 온전히 담아낸 이야기 속에서 중얼거렸습니다.
'저는 못해요.'
여전히 사랑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제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크게 4장의 총 88가지 사랑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삶은 '사랑 외에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부족한 서평을 전합니다.
1장. 사랑의 의미
"나 하나만 참으면 되었다."
어쩌면 결혼 전까지 저자의 삶은 감히 밋밋하거나 순탄했을지 모릅니다.
결혼 후, 지극히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된 시집살이는 결국 자신을 완전히 무너트리면서까지 사랑을 증명해내고 있었습니다. 천직이라고 믿었던 교사의 길마저 내던지며 지키고자 했던 것이 '고작 우리가 흔하게 내뱉는 노래가사의 사랑 때문일까'라는 오만한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자를 자식만큼 아끼셨던 초등교사 아버지의 막내딸이자, '부처님 반토막'이란 말이 어울릴 만큼 착한 남자의 아내로서, 줄곧 아픈 모습만 보이며 늘 미안했던 삼 남매의 엄마로서, 자존심 세고 날 선 말들을 쏟아내는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로서, 오롯이 살아낸 인고의 여정이 곧 '사랑'이었음을, 저자는 그녀의 일생으로 고요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사랑의 의미를 명쾌하게 활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저자의 아버지께서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는 말씀이 저에게는 사랑의 의미로 깊게 다가왔습니다.
2장. 사랑의 진실
"이젠 아무 걱정 없다."
저자의 시어머니께서 김장을 담그고 하신 말씀이자, 우리의 부모님들이 혼잣말로 되뇌는, 당신 삶에 여한이 없음을 위로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17년간, '유치하게' 손익을 따지면서 시어머니를 모시지 않았고, 비록 많은 시간 병원을 드나들었지만 삼 남매와 학교의 아이들을 지켜냈습니다. '질투가 없는' 사람처럼 주변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내고, 끝내 더 주지 못한 미안함을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말이죠. 정작 집안의 막내며느리가 맏이 역할을 도맡으며, 소녀 가장이 나약한 어른들을 대신해 가냘픈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른 채 위태로운 하루를 견디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8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저자도 모르게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의 습관을 닮아가고, 일상의 귀퉁이에서 문득 떠난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립지만, 주어진 하루를 무사히 보냅니다. 아마도 저자는 감사한 하루의 끝에 혼잣말로 속삭이지 않았을까요. '이젠 아무 걱정 없다.'
3장. 사랑의 이해
"백점이야, 백점."
저자는 고된 시집살이와 거친 병마와 싸우며 무너지는 삶을 이어왔지만, 변함없이 늘 그녀를 아끼고 지지해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섬세하게' 저자를 살뜰히 챙겨주고, 부부 사랑의 정석을 실천한 남편. 떠나시는 날, 저자를 향해 진심으로 고마움의 눈물로 사랑을 전해주신 시어머니. 병약한 엄마의 빈자리가 무색할 만큼 훌륭하게 자라 준 삼 남매. 교사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의 본보기를 가르쳐 주신 아버지와 전업 주부로 평생을 뒷바라지에 헌신하신 어머니. 이른 나이에 퇴직한 교사생활이지만, 잊지 않고 찾아주는 귀한 제자들.
그들은 저자의 지난한 삶의 엉켜있던 실타래를 풀어주고, 사랑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바로 보게 해 주었습니다. 수녀가 되고 싶었던 저자의 어린 시절, 세상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생을 살고자 했지만 가난한 시골집 막내아들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결국, 시댁과 그 주변분들을 위해서 아낌없는 사랑과 치유의 삶을 전하는 마중물이 되어,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노릇'을 해내었습니다. 백 점짜리 며느리였고, 백 점짜리 엄마이자 아내이며 좋은 사람으로.
4장. 사랑의 이유
"그냥 좋은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사는 거야."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에, 언젠가는 모두 헤어지고 이별합니다. 하지만, 종종 이를 망각한 채 상처와 미움으로 삶을 채우기도 합니다. 저자 또한, 부부와 가족의 연을 이어오며 한 때 원망과 후회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냅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싶다며 모시지 않으면 이혼도 불사하겠다는 남편에게, 모진 말들을 내뱉으며 절망과 분노를 폭발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어떻게든 살아가면서, 철이 들어가고 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평소 저자는 일상에서 사람을 위한 소소한 선행과 측은지심을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의 긴 터널 속에서도, 사람을 향한 선량한 마음과 행동은 결국 그녀의 이야기를 '사랑'이라는 결말로 이끌어 냅니다. 어쩌면 진부할지 모르지만 '힘든 시간을 견뎌낸 주인공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이, 저자는 순리대로, 거스르지 않게 감사한 오늘을 마주하며 행복한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늘 그랬듯 사람을 사랑하며.
서평을 끝내며, 부족한 글솜씨와 미흡한 감상평의 창피함은 견딜 수 있지만, 저자의 일생을 반추하여 저를 들여다보는 일은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의 초반 몇 편의 이야기를 읽던 중에 '내가 저 상황이었으면, 나는 못했어.'라는 말을 무심하게 곱씹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딸과 초등학교 4학년 딸의 사춘기를 마주하고 경력단절을 고민하는 아내를 지켜보며, 제가 가진 사랑의 크기를 가늠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먼저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접하지만, 정작 저 스스로는 나의 부모님을, 나의 아내를, 나의 딸들을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말과 행동이 마음을 앞지르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수아 작가님의 이야기처럼 일단 꾸준히 오늘을 살아내 보려고 합니다. 여전히 서툴지만, 계속 사람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