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난 다행이라는, 비교의 행복에 머무르지 않기를

타인의 아픔에 빗댄 나의 안녕

by 앓아야 안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를 위해서, 새벽에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엄마와 어린 동생을 꿋꿋이 챙기고 있는 10세 ㅇㅇㅇ군."
"하교 후 또래의 친구들이 오손도손 문방구 앞에 모여있지만, 오늘도 9세 ㅇㅇㅇ양은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의 식사와 집안일을 위해서 친구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합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매년 어느 시기가 되면 TV에서 '소년소녀가장'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부모님과 함께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소녀가장들이 겪는 사연들은 마치 최고를 뽑는 대회마냥, 누가 더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있는지를 겨루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얄궂게도 방송이 끝나면 '어떻게 저리 살 수 있을까, 그에 비하면 난 그럭저럭 행복한 거네'라는 안도감으로, 어린 가장들의 슬픔을 밀어냈습니다.





"위를 보고 살면 끝도 없으니까, 적당히 아래를 보면서 살어."

제가 괜한 욕심을 부릴 것 같으면, 어머니가 줄곧 해주시던 잔소리이자 위로였습니다.


하지만, 사십 중반을 넘어 사람에 휘청이고,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챙기면서, '위는 그렇다 치고, 아래는 괜찮나?'라는 괜한 '오지랖' 넓은 걱정이 차오릅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님을 자각합니다.


여전히 무관심한 주변에는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슬픔과 불행이 넘쳐 납니다.

외벌이로 빡빡한 삶이지만 그들에게 작은 도움, 아니 나는 무관심한 주변과 달리 그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거창한' 자긍심으로 정기후원 자동이체를 등록하면서, 결국 그들의 아픔에 빗대어 나의 안녕을 확인하는 옹졸한 나와도 마주합니다.





저 사람들에 비하면, 그나마 난 다행이라는 비교의 행복에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나와 당신, 우리가 아닌 '그들'의 아픔과 슬픔마저도 본연의 모습대로 끌어안고, 나의 행복과 불행 또한 주변에 견주어서 위축되거나 주눅 들지 않기를.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 비바람 몰아치는 팀과 메리의 야외 결혼식에서

"비 오는 날이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까?"
"아니, 너무 완벽했어!"


스크린샷_2016-10-25_오후_6.58.55.png 나의 행복과 불행은 온전히 나의 것임을


K-5.png My Son, My Dad, 시간 여행을 끝내며 아버지와 아들의 온전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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