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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디베이트 May 01. 2019

심신미약 감경, 꼭 필요한 제도일까

토론 논제 선정 가이드 #2


얼마 전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건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새벽에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비상계단으로 급하게 내려가던 사람들이 2층 계단에서 흉기를 들고 기다리던 한 남자에게 무참히 살해당하게 된 것이다. 12살의 어린이를 포함하여 가해자 안인득 씨는 특히 노약자, 여성을 대상으로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안인득 씨가 과거에 5년간 조현병과 관련된 치료를 68차례 받았고, 최근 몇 년 간은 조현병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이 보도되자 국민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 심신미약을 이유로 또 감경*을 주장하는 것이냐며 분노하고 있다. 


*감경은 판결 선고 전에 기준 형량보다 형을 줄여주는 것을 의미하며, 감형은 판결 선고 확정 후에 형을 줄여주는 것을 말한다.


심신미약 감경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테이블을 빨리 치워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21살의 PC방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살해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서도 동일한 논란이 있었다. 피의자 김성수 씨 측은 우울증 치료 병력을 제출하여 심신미약 감경을 노리는 거냐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에 대한 국민 청원도 역대 가장 많은 수의 국민이 서명하여 심신미약 감경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 사건이 있은 후 2018년 12월 김성수법이 통과되었다. 이전에는 심신미약으로 확인이 되면 의무적으로 형을 줄여야 했으나, 감경 의무 조항을 폐지하여 판사의 재량에 따라 심신미약일 경우 ‘감경할 수 있다’로 바뀌게 되었다. (김성수는 공주치료감호소에서 한 달 여 동안 정신감정을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라는 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제도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왜 심신미약이 감경 사유가 되는 것일까? 심신미약이란 “심신장애로 인하여 시비를 변별하고 또 그 변별에 의해 행동하는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상당히 감퇴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법적으로는 이런 심신미약 상태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능력이 없는 상태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책임이 없다면 형벌이 없다는 ‘책임주의’라는 형법의 대원칙 하에서 이런 심신미약 감경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형이 낮춰지는 경우를 여러 번 접한 사람들은 심신미약 감경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신미약”,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박문각, 2019.4.24 검색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83423&cid=43667&categoryId=43667



그렇다면 ‘심신미약 감경’에 대한 토론을 하고자 할 때, 논제는 어떤 방식으로 정해질까? 


『토론, 설득의 기술』에서 소개하는 "논제 선정을 위한 체크리스트"(p. 305)에 따르면, 논제 문장은 일정한 형식을 따라야 한다.      


1. 논제의 문장은 긍정 측의 주장을 담은 평서문의 형태여야 한다. (p. 309)


“심신미약 감경을 폐지해야 하는가”와 같이 의문문으로 토론 논제를 설정하면 긍정과 부정 측의 입장이 무엇인지 논제만으로는 불분명하다. 존치의 입장과 폐지의 입장 중 어느 것이 긍정 측인지 바로 알기 어렵기 때문에 토론 논제는 평서문의 형태로 정하는 것이 좋다. 또한 “심신미약 감경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와 같이 이중 부정의 형태로 논제가 정해지면 이 역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2. 현재의 상황이나 일반적 인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주장을 가진 팀이 긍정 측을 맡도록 논제를 정해야 한다. (p. 310)


현재의 상황을 살펴보자. 심신미약 감경에 관한 조항이 형법에 적시되어 있으며 판사의 재량으로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형이 감경될 수 있는 상황이다. 토론은 이와 같은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에, 심신미약 감경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팀이 긍정 측을 맡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쪽은 자연스럽게 부정 측이 된다.      



3. 주제에서 논제를 뽑을 때는 논점이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사실논제, 가치논제, 정책논제의 형태로 설정되어야 한다. (p. 311)


심신미약 감경에 관해 토론을 하고자 할 때 우리가 토론하고 싶은 부분에 따라 사실논제, 가치논제, 정책논제와 같은 형식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심신미약 감경이 남용되고 있는지의 여부와 같이 사실관계를 따져보고 싶다면 사실논제의 형식을 따른다. (“심신미약 감경은 남용될 위험이 높다.”) 


심신미약 감경이 애초에 선악판단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형평’이라는 가치를 수호하는 바람직한 제도인지 따져보고 싶다면 가치논제의 형식을 따른다. (“심신미약 감경은 바람직한 제도이다.”) 


심신미약 감경이 폐지되어야 할 필요성, 혹은 폐지되었을 때 생길 문제점이나 장점에 대해 다루고 싶다면 정책논제의 형식을 가져와야 한다. (“심신미약 감경을 폐지해야 한다.”)     




이와 같은 체크리스트를 활용하여 우리는 논제를 정할 수 있다. 논제를 정하는 것은 토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논제가 명확하게 정해져야 그 토론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막힘이 없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 설득의 기술』은 논제를 선정하는 것부터 실전노하우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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