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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5. 2019

# 06. 가정주부

목욕을 마치고 식사를 하자는 이야기에 제제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밥이 싫다는 제제에게 그럼 무얼 먹고 싶으냐 물었다. 제제는 따뜻한 물이 가득한 욕조에 앉아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빠, 나 어묵 국수 먹고 싶어."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이제 작 44개월 짜리 아이에게도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래, 아빠가 맛있게 요리할게." 
 
목욕을 마치고 새 옷을 입힌 후에 로션과 립밤을 발라주고 머리칼을 잘 말려줬다. 헤어드라이어가 윙윙 제 할 일을 하는 동안 제제는 병아리처럼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소고기도 넣어줘.
국수는 고기랑 먹어야 맛있어." 
 
어묵 국수에 소고기도 넣으라는 지시다. 언젠가 아빠가 했던 말이 생각난 모양인데 헤어드라이어의 소음 속에서도 할 말은 하는 녀석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한다. 본인 입맛에 맞게 요리해달라는 세세한 주문.
 
욕실을 정리하고 주방으로 가서 숙련된 무술 고수처럼 손을 놀린다. 웍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소고기와 어묵이 허공에서 춤을 추며 양념 옷을 골고루 입는다. 바로 옆 화구에선 끓는 물에 국수가 익어가고 있다. 
 
제제는 소고기 어묵 국수 한 그릇을 말끔하게 비웠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제 본격적인 식욕 폭발의 계절이 됐다. 열심히 요리해서 가족이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게끔 하는 것도 내 주요 임무 중 하나다. 
 
이 겨울, 

즐거운 마음으로 주방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나는 육아하는 아빠이자 가정주부니까. 


응? 소고기는 어디로 다 숨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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