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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5. 2019

# 05. 경의를 표합니다

비교적 일찍 결혼해서 아빠. 엄마가 된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출산과 육아 이야기로 술자리를 시끄럽게 만들 때, 당시 삼십 대 중반이었던 나는 귀로는 듣고있으되 대화에 참여한다거나 길게 생각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많이 힘들겠지...
내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출산과 육아라는 건, 이삼십 대를 꼬박 비혼주의자로 살아온 내가 겪어야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으니까 그저 묵묵히 듣고, 속으로 짐작하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 후, 덕담을 몇 마디 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로부터 몇 해가 흐르고서야 결혼을 했고,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제가 태어났다.
 
출산과 육아의 시작, 그 과정에서 예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무한한 기쁨과 말로 형용하기 힘든 행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아빠가 된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그 깨달음은 '아빠라는 역할과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더 진중하게 가지자'는 식의 긍정의 방향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긍정은 그저 나를 위한 긍정이었던 것 같다.
 
온 힘을 다해 출산한 아내의 수고로움을 곁에서 모두 지켜보았지만, 마치 그 시간을 둘이 반반씩 부담한 것처럼 편하고 좋은 쪽으로만 생각했다. 말하자면 제제가 태어난 그 순간까지 '나도 내 몫을 다했다'는 식이었던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열심히 일하자는 생각을 했을 뿐, 집에 홀로 남아 아이를 보살피는 아내를 생각하지 않았다.
 
아내가 무척 힘들 거라는 사전적 예측만 머릿속에 부유할 뿐, 이내 일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면서 나는 오늘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기 바빴다. 그 시간에도 아내는 누구의 배려도 없이 힘을 내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엄마라는 존재의 고군분투를 '아빠'가 아닌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목도하면서 생각이 엄청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지만 그런 흔하게 봐왔던 출산. 육아과정이 한 사람의 성격까지도 쉽게 바꿔버릴 만큼 힘들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더라도 엄마는 깊이 외롭기까지 할 수 있으며, 뉴스에 종종 나오듯 심각한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는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 크게 공감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당시 내가 쉬이 지나쳤던, 혼신의 힘을 다 쏟아부은 출산 즈음의 아내를 다시 떠올리게 되기도 했다. 많은 뉘우침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운명의 손짓이 불러서일까?
 
2015년 8월, 제제가 태어나 백 일을 지날 무렵 나는 전업주부가 됐고 육아를 맡게 됐다. 그리고 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아빠지만, 지난 시간 동안 엄마로 살았던 셈이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겪어내고 또 겪고 있는, 그 '엄마니까' 다 해내야 하는 일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가슴 깊이 와닿는다.
 
직접 육아를 하니 알 것도 같다.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사방이 막힌 커다란 성 안에 놓인 기분이 들 때가 있다는 것과 온 힘을 다해도 티 하나 안 나는 일이라는 것, 내가 잘 하고 있나 늘 반문하게 되는 행위이며, 그것엔 끝이 없다는 점도.
 
이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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