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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Feb 24. 2019

# 83. 함께 여는 아침이 좋다

# 함께 여는 아침이 좋다 
 
평일 아침 아홉 시, 


항상 같은 시각에 집을 나선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언제나 셋이 함께다. 나와 아내 그리고 제제가 바로 그 구성원이다. 
 
"제제, 이제 신발 신을 시간이야. 

 여보, 당신은 준비 다 마쳤어요?" 
 
"네, 가방하고 준비물 다 챙겼어요. 준비 끝났어요." 
 
"엄마, 나 신발 다 신었어." 
 
제제의 가방이나 준비물을 누가 들고 걷느냐가 달라질 뿐이다. 제제 스스로 씩씩하게 가방을 들고 나설 때가 있고, 나와 아내가 들어줄 때도 있다. 하지만 같은 시각에, 같은 길을, 같은 사람들이 나란히 걷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작년 봄,  
 
제제는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어른들조차 꽤 어려움을 겪는 일이기 때문에 제제 역시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걸 싫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셋 모두 함께라면 제제가 더 좋아하겠지." 
 
제제가 잠에서 깼을 때,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편안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을 제제가 즐겁게 여길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아내의 제안을 두고 대화를 나눈 끝에,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만큼은 아빠, 엄마 모두가 함께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시작된 '셋이 함께인 등원 길'이 벌써 일 년 가까이 지났다. 봄을 지나 여름을 거쳐 가을에 머물다가 겨울로 왔는데, 이제 다시 봄을 코앞에 두고 있다. 
 
 
오늘 아침 아홉 시,  
 
외투를 입고 머플러를 두른 제제에게 아내가 두터운 모자를 씌웠다. 바람이 신경질을 내듯 불어대는 날이지만 귀까지 충분히 가려주었고 털신도 준비했으니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다. 제제의 가방은 이미 신발장 앞에 챙겨두었다.  
 
"이제, 출발해도 되겠지?" 
 
"아빠, 따뜻한 신발 고마워." 
 
"여보,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 눌렀어요." 
 
집을 나서자 차갑고 드센 바람이 불어왔다. 제제는 이렇게 심한 바람을 '황소바람'이라고 부른다. 어린이집에 무사히 도착하려면 "황소바람'과 싸워서 이겨야 한단다. 각자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힘을 합쳐야 된다는 걸 열심히 설명하던 제제가 내게 목말을 요구했다. 
 
"변신 시작!" 
 
제제의 지시에 맞추어 목말이 완성됐다. 제제를 목에 태우고 안전하게 손을 잡은 후, '황소바람'을 향해 당당하게 진격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아내는 한참을 웃었다.  
 
사실 지난 일 년 동안, 제제가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날은 생각보다 많았고, 어린이집 문 앞에서 헤어지기 싫다고 버티던 날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부부의 노력이 헛된 일이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이렇게 셋이서 서로 웃어가며 함께 걷는 시간이 무려 일 년치나 쌓였기 때문이다. 
 
가끔 어린이집에 가는 게 싫다고 할 때는, 제제와 걷고 싶다고 다정하게 부탁하면 된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헤어지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경우에는, 사랑하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속삭여주면 금세 밝게 웃는 녀석이다. 
 
내일도 아침 아홉 시가 되면, 나와 아내는 제제를 사이에 두고 왼편, 오른편에 서서 사이좋게 함께 걸을 예정이다.  
 
함께 여는 아침이 좋다. 
 
#45개월 #제제 #아빠육아 #육아이야기 
#함께_여는_아침이_좋다 #어느덧_일_년

매일 아침, 우리는 함께입니다.


아빠, '황소바람'이 불어. 목말을 타고 합체하자.
제제가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길, 저와 아내는 언제나 제제 곁을 지킵니다.
제제가 처음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쭉 그렇게 해왔어요.
차곡차곡 쌓인 아침이 벌써 일 년입니다.
함께 여는 아침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계속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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