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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Mar 01. 2019

# 86. 정리하는 습관

# 정리 
 
거실과 방을 오가며 제제가 바쁘게 움직인다. 늘어놓은 장난감을 정확하게 분류하더니, 각각의 장난감 수납함에 알맞게 담는 것까지 무리 없이 해낸다.  
 
"나, 정리 잘하지?" 
 
"이야~ 우리 제제는 정리 대장이구나." 
 
한껏 추켜올려주었더니 잠시 으스대던 제제가 방 한 편 자동차 무리에 다가간다. 내가 어제 대충이나마 정리했던 곳인데 제제의 마음에는 흡족하지 않은 모양이다. 특징에 따라 다시 분류하고 오와 열을 맞출 생각인 것 같다. 
 
물론 이런 상황이 자주 찾아오는 건 아니다. 둘이 함께 정리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사실 정리는 대부분 내 몫이기 때문에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칭하는 게 맞다.
 
"정리하면 필요한 장난감을 찾기가 쉬워." 
 
"아빠, 정리하지 않으면 어떻게 돼?" 
 
"어디 있는지 몰라서 헤매는 경우가 많지."  
 
정리하면 좋은 점에 대해 제제와 종종 대화를 나눈다. 정리하지 않을 때 생기는 문제점을 넌지시 일러준 적도 많다. 하지만 그걸 익히고 자연스레 행하는 건 온전히 제제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정리 여부나 정리 방식을 놓고 꾸중하지 않는다. 다만 실보다 득이 많은 일이니 행하면 칭찬할 뿐이다.
  



내가 꽤 오랜 시간 동안 몸담았던 회사에는, 이십 대부터 육십 대까지를 아우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성인들 뿐이었던 그곳에도 정리와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집기, 대충 쌓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서류뭉치, 먼지 쌓인 책상, 그런 건 시간이 지나도 절대 바뀌는 법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이에 따른 차이, 성별에 따른 차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학벌마저도 무척 좋은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이코, 책상이 이게 뭐야." 
 
"왜요? 이 정도면 괜찮은데요 뭘."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 동료 및 선후배들과 대화를 나눈 덕분에 정리라는 것에는 개인차가 있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에겐 효율적인 업무공간이 다른 이에겐 난장판으로 보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그 공간이 지나치게 깔끔하다는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A가 나름대로 정리한 공간에 대해 B는 정신 사납게 느끼고, C는 뭘 이렇게까지 신경 써서 정리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정리하는 습관이 나이, 성별, 교육의 차이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정리하는 사람, 꼼꼼하게 정리하는 사람, 대충 정리하는 사람, 이렇게 세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은 타고난 기질의 차이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쪽이 더 합리적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가진 장난감을 적당히 펼쳐놓은 상태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아이가 있고, 깔끔하게 정리하며 노는 방식을 선호하는 아이도 있다. 그 중간인 아이 역시 당연히 존재한다. 놀이를 마친 이후도 그렇다. 나름 고심해서 장난감을 모아놓는 아이와 확실히 분류해서 제자리에 두는 아이가 있다면, 대충 하는 척만 하다가 흥미를 잃어버리는 아이도 있다.
 
정리하는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은 잠시 옆으로 밀어놓아도 괜찮다. 정리를 '잘'한 것과 '못'한 것의 차이도 미미하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기질 차이가 만들어내는, 정리에 대한 가치관이 서로 조금씩 다를 뿐이다. 
  


"이제, 자동차들도 예쁘게 정리가 됐지?" 
 
"역시 정리 대장은 남다르구나."
 
제제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제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본인의 방식대로 정리를 마친 녀석이 기특해서 아낌없는 칭찬을 건넸다. 정리는 제제가 하고플 때 하는 거라고 언제나 강조해왔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나 보다. 이쯤 됐으면 하나를 더 가르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제, 정리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어떤 경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때." 
 
제제의 방으로 가서 장난감과 책을 잔뜩 꺼내 바닥에 펼쳐놓았다. 먼저 장난감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다음, 책을 제자리에 꽂았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놀았으면, 사용한 교구는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해. 제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꺼내 읽었으면, 꺼낸 곳에 책을 다시 꽂아야 다른 사람이 찾기 쉬워. 이번에도 금세 이해하는 제제다.
 
다시 주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탁에서 의자를 빼놓고 걸려 넘어지는 흉내를 냈다. 그런 다음,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면 의자를 반듯하게 정리하는 게 좋다고 말했더니 제제도 맞장구를 친다. 의자를 넣어야 지나는 사람이 다치지 않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제 다 옮겼어?" 

 
"아니, 아직 더 가져와야 해." 
 
부지런히 방과 거실을 오가며 공룡들을 옮기던 제제와 눈이 마주쳤다. 내 질문에 사랑의 윙크를 날린 제제가 공룡들을 한 무더기 내려놓고는 다시 방으로 향했다. 레고 박스 네 개도 옮길 모양이다. 이번 놀이는 규모가 엄청날 것 같다.  분명 한 시간 전에 제제 스스로 정리를 마쳤는데 어느새 거실 바닥은 온갖 공룡들로 가득하다. 피식 웃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제가 자라서 어떤 유형이 될는지는 아직 모른다. 적당히 정리하는 녀석이 될 수도 있고, 꼼꼼하게 정리하는 녀석일 수도, 그도 아니라면 아예 정리와 담을 쌓은 녀석으로 자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녀석으로 자라더라도 정리에 관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정리를 '잘했다', '못했다' 언급하는 일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정리 문제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녀석으로 가르치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아빠, 우리 쥬라기 공원 만들자." 
 
"좋아, 어디 한 번 시작해 볼까?" 
 
정리는 나중 문제다. 지금은 그저 열심히 쥬라기 공원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아이에게 정리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건 좋은 일입니다. 정리하는 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분명 많은 장점이 있어요. 제제네 거실입니다. 깨끗하죠?


하지만 내 아이에게 정리하라는 말을 마치 지시하듯 건네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천천히 습관이 붙도록 해주는 게 옳겠죠.
저도 정리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지만 이 습관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필요해서 스스로 하고 있죠.
어떤 이가 정리하는 걸 싫어한다고 해서 그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어요.
공공장소에서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부분은 반드시 정리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어린이집, 학교, 도서관을 비롯한 많은 곳이 그렇죠.
그런데 개인의 영역은 개인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정리하라고 혼내고, 정리하는 아이에게 '잘했다', '못했다' 점수를 매기면 할 아이도 안 해요.
함께 놀고 함께 정리하면서 정리라는 행동 자체에 칭찬을 건네면 참 좋은 것 같아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말이죠.
제제가 어떤 아이로 자라든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정리는 제제가 알아서 할 몫입니다. 제 집은 제가 관리합니다. 깨끗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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