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chaelKay Mar 03. 2019

# 90. 당신 덕분에

# 2019년 2월 22일


커다란 봉투에는 사탕 꽃다발이 잔뜩 담겨 있다. 조심스레 그걸 안아 들고는 아내가 먼저 현관문을 나섰다. 물론 가방을 둘러멘 제제와 나도 함께다. 
 
오늘은 어린이집 수료식 날이다. 
 
따사로운 햇살은 이른 아침부터 어깨를 쭉 펴게 만들고, 스치는 바람엔 제법 부드러운 기운이 실려 있다. 벌써부터 피어난 매화꽃이 선명하다. 온 힘을 다해 생의 기운을 뻗어내는 매화나무처럼, 잔디도 노력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여기저기 초록빛으로 염색을 하고 봄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니 말이다. 
 
"여보, 매화꽃 참 예쁘죠?" 
 
"아빠, 초록 풀이 피어났어." 
 
작년 이맘때, 제제가 처음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날에도, 우리 셋은 비슷한 풍경 속에서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서로를 바라보다가 햇살 아래, 바람 사이로 매화나무와 잔디를 바라보며 걸었더랬다. 아직도 그 순간이 눈에 선한데 벌써 한 해가 꼬박 지났다. 
 
"참 많이도 자랐네."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 제제 참 씩씩해졌죠?"  
 
키가 제법 자랐다. 힘을 내서 쫓아가지 않으면 잡기 어려울 만큼 빨리 달리는 아이가 됐고 힘겨워하던 놀이기구에 타잔처럼 오르내리기도 한다. 긴 시간의 산책에도 힘겨워하는 일이 없기도 하다. 
 
말솜씨가 더욱 정교해졌다. 말에 이중으로 덫을 놓아도 금세 알아듣는 데다 아빠의 어휘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제제와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성인과 마주 앉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어린이집 문을 여는 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난 성장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하루, 또 하루, 그렇게 매일 아침 제제가 등원하는 길을 함께 걸었는데 어느새 그게 모여 일 년이 됐다. 
 
"엄마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제제가 몸을 돌리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부모의 참관 없이 진행되는 수료식이라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제제, 수료식 마치면 레일바이크 타러 가자." 
 
"수료식 잘 하고, 이따가 아빠랑 재미난 시간 보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내는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말없이 매화꽃을 지켜보았다. 잔잔한 미소는 입가에 걸려있는데 눈빛은 아련하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도 같아 슬쩍 끼어들었다. 
 
"헤이, 매화꽃보다 당신이 더 아름답다." 
 
"자꾸 웃기지 말아요. 잔뜩 폼 잡고 있었는데." 
 
손을 꼭 잡고 산책로를 걸었다. 서로를 바라보다가 햇살 아래, 바람 사이로 매화나무와 잔디를 바라보았다.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아내에게 말했다. 
 
"지난 일 년 동안 당신이 제일 애썼어요.
당신 덕분에 제제가 이만큼 자란 거예요." 
 
 
#제제 #45개월 #아빠육아 #육아일상 
#어린이집수료식 #수료식선물
#당신_덕분에 #고마워요

어린이집 수료식이 있었어요. 계속 같은 곳에 다닐 예정이지만 한 해 교육과정을 마쳤으니 수료식을 합니다.


매화꽃이 피어나던 작년 이맘때, 제제는 처음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때도 이렇게 초록 풀이 돋아나고 있었죠. 어느덧 한 해가 꼬박 지나갔습니다.
제제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훌륭한 선생님들의 지도 아래 많은 걸 배웠습니다.
키도 훌쩍 자라고 마음씨도 자란 키만큼이나 더 고와졌습니다.
어린이집과 선생님들, 친구들, 그리고 제제의 친가, 외가 모든 가족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이렇게 순조롭지는 않았을 거예요.
제제, 밥 잘 먹고, 아빠랑 잘 놀고, 잘 자고 모든 게 다 고맙다.
하하하, 상장도 받았어요. 이 모든 영광은 아내에게..., 제니스, 지난 일 년 동안 참 많이 애썼어요. 고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 89. 태극기를 그려 볼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