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봉투에는 사탕 꽃다발이 잔뜩 담겨 있다. 조심스레 그걸 안아 들고는 아내가 먼저 현관문을 나섰다. 물론 가방을 둘러멘 제제와 나도 함께다.
오늘은 어린이집 수료식 날이다.
따사로운 햇살은 이른 아침부터 어깨를 쭉 펴게 만들고, 스치는 바람엔 제법 부드러운 기운이 실려 있다. 벌써부터 피어난 매화꽃이 선명하다. 온 힘을 다해 생의 기운을 뻗어내는 매화나무처럼, 잔디도 노력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여기저기 초록빛으로 염색을 하고 봄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니 말이다.
"여보, 매화꽃 참 예쁘죠?"
"아빠, 초록 풀이 피어났어."
작년 이맘때, 제제가 처음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날에도, 우리 셋은 비슷한 풍경 속에서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서로를 바라보다가 햇살 아래, 바람 사이로 매화나무와 잔디를 바라보며 걸었더랬다. 아직도 그 순간이 눈에 선한데 벌써 한 해가 꼬박 지났다.
"참 많이도 자랐네."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 제제 참 씩씩해졌죠?"
키가 제법 자랐다. 힘을 내서 쫓아가지 않으면 잡기 어려울 만큼 빨리 달리는 아이가 됐고 힘겨워하던 놀이기구에 타잔처럼 오르내리기도 한다. 긴 시간의 산책에도 힘겨워하는 일이 없기도 하다.
말솜씨가 더욱 정교해졌다. 말에 이중으로 덫을 놓아도 금세 알아듣는 데다 아빠의 어휘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제제와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성인과 마주 앉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어린이집 문을 여는 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난 성장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하루, 또 하루, 그렇게 매일 아침 제제가 등원하는 길을 함께 걸었는데 어느새 그게 모여 일 년이 됐다.
"엄마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제제가 몸을 돌리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부모의 참관 없이 진행되는 수료식이라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제제, 수료식 마치면 레일바이크 타러 가자."
"수료식 잘 하고, 이따가 아빠랑 재미난 시간 보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내는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말없이 매화꽃을 지켜보았다. 잔잔한 미소는 입가에 걸려있는데 눈빛은 아련하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도 같아 슬쩍 끼어들었다.
"헤이, 매화꽃보다 당신이 더 아름답다."
"자꾸 웃기지 말아요. 잔뜩 폼 잡고 있었는데."
손을 꼭 잡고 산책로를 걸었다. 서로를 바라보다가 햇살 아래, 바람 사이로 매화나무와 잔디를 바라보았다.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아내에게 말했다.
"지난 일 년 동안 당신이 제일 애썼어요.
당신 덕분에 제제가 이만큼 자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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