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물학자 제제 박사가 화석 발굴에 열심이다. 조수 마이클이 내미는 음료수도 마다한 채, 흙을 파고 모래를 걷어내는 작업만 반복할 뿐이다.
"무얼 찾으시는 건가요?"
"카르노 타우루스."
라틴어 조합으로 보면 '육식 황소'라는 뜻이다. 머리에 황소처럼 두 개의 뿔이 난 육식 공룡의 모습을 상상하면 얼추 들어맞을 것 같다.
조금씩 걷어내는 모래 사이로 공룡의 꼬리가 보인다. 그걸 본 제제 박사의 손놀림이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조금씩 몸통이 제 모습을 드러내더니 어느새 머리까지 확인 가능한 상태가 됐다.
"오! 이 녀석이 카르노 타우루스인가요?"
"응, 맞아."
두 손에 잔뜩 달라붙은 모래를 털며 제제 박사는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어디로 데려갈 거냐고 묻자 공룡박물관이라고 답한다. 나머지는 조수에게 맡기려는 모양이다. 눈치 빠른 조수인 마이클은 재빨리 현장 뒷수습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니야, 한 마리 더."
"박사님, 더 발굴하시려고요?"
"한 번 더!"
다섯 마리의 공룡을 들고 공원을 찾았다. 박사 역의 제제를 도와 흙과 모래를 만지기 시작한 지 벌써 한 시간 째다. 지금껏 조수 역을 맡아 땅을 파고, 공룡을 묻고, 그걸 다시 발굴하는 행동만 반복했다. 하도 오래 쪼그려 앉은 자세를 유지했더니 내 몸안의 배터리가 방전된 느낌이다.
"이제 그만하는 건 어떨까?"
"그럼, 아빠가 박사님 할 거야?"
아빠가 배역에 불만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제제는 본인이 조수 역을 맡겠다고 자청한다. 내가 다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자, 제제는 그제야 내 얼굴을 살피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 힘들어? 내가 안마해 줄게."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제가 곁에 다가와 작은 주먹으로 허리 어림을 두드려 준다. 시원해졌냐고 물으며 눈꼬리를 초승달처럼 접고 웃음 짓는 제제를 보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도 따라서 한껏 웃었다. 내 몸에 급속 충전기라도 연결한 것처럼 다시 활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충전이 완료됐으면,
또 방전될 때까지 움직이면 된다.
"박사님, 이번에 발굴할 공룡 이름은 뭐죠?"
"음, 이번에는 딜로포 사우루스."
조수 마이클이 열심히 흙을 파서 작은 구덩이 안에 딜로포 사우루스를 눕혔다. 다시 열심히 흙과 모래를 덮는 모습이 어쩐지 아까보다 활기가 넘치는 것 같다. 작업이 완료되자 지켜보던 제제 박사가 신중하게 발굴을 시작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온다. 달보드레한 바람은 세상 여기저기에 생명을 나눠주더니, 둘의 등줄기를 적시던 땀까지 다정하게 훑어주며 지난다. 그렇게 한참을, 제제 박사는 화석 발굴에 매진했다. 조수 마이클도 물론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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