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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Mar 24. 2019

# 96. 아빠 물고기와 아기 물고기

제제와 바닷가를 찾았다. 
 
손을 높이 들어 주먹을 꼭 쥐면 금세라도 푸른 물이 뚝뚝 흐를 것만 같은 하늘, 그 아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바다는 평소보다 그윽한 푸르름과 고운 물비늘을 뽐내는 중이었다. 
 
"아빠, 물고기 이야기해줘." 
 
바다를 볼 때마다 제제에게 건네는 이야기가 있다. 제제는 바다 위를 오가는 고기잡이 배를 한참 지켜보다가 오늘도 어김없이 그 이야기를 청해왔다. 크흠, 크흠, 목소리를 가다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항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어. 물고기는 자기가 사는 작은 어항에서 벗어나고 싶었지. 잠수해보지 못한 깊은 곳, 떠돌아보지 못한 넓은 곳, 그런 깊고 넓은 바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게 있었거든. 검고 강한 손이 깊은 곳에서 끌어당기면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물고기는 짐작하고 있었어. 바다는 너무 넓은 곳이라 정작 가야 할 방향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 거야. 
 
"그래서 물고기는 바다로 갔어?" 
 
이미 여러 번 들었음에도 제제는 늘 같은 순간에 같은 질문을 한다. 빙그레 웃으며 제제의 머리칼을 쓸어주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바다가 꼭 좋기만 한 곳은 아니라는 걸 물고기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계속 깊고 넓은 곳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바다로 갔지. 바다는 생각대로였어. 세찬 파도와 비바람은 그런대로 견딜만했는데 워낙에 깊고 넓어 경험이 쌓여도 늘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경험하고 경험해도 편안함이란 찾아오지 않았대. 
 
"행복하지 않았던 거야?" 
 
수많은 것들이 물고기를 스쳐 지났지만 정작 곁에 남은 건 없었지. 언제나 홀로 판단하고 홀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의 연속이니 만족스러운 결과를 받아 들고도 조급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어. 뜻밖의 맑은 날이 찾아와도 마냥 웃고 있을 수 없었대. 갑자기 태풍이 찾아들 수도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렇게 돌아와 물고기는 다시 어항 속에서 살아. 여자 친구 물고기와 결혼을 하고 아기 물고기를 낳았다더라고. 그러니까 그 물고기는 이제 아빠 물고기가 된 셈이지. 아빠 물고기는 더 이상 바다를 꿈꾸지 않는대. 작은 어항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곳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야. 
 
"그럼 내가 그 아기 물고기야?" 
 
그런가? 어쨌든 아빠 물고기는 바다에 가본 적이 있잖아. 깊고 넓은 바다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경험이 있으니까 어디가 안전할까, 조심해야 할 게 무엇일까, 위험한 게 무엇일까를 조금은 익혔겠지? 예쁜 곳은 어디인지, 맛있는 건 어디에서 파는지, 재미가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을 거야. 그래서 아기 물고기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예쁜 곳에 가고, 맛있는 걸 먹고, 재미있게 놀지. 그러면서 안전하게 운전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위험한 놀이는 하지 않는 거겠지? 
 
"아기 물고기는 바다에 가면 안 돼?" 
 
아니, 아빠 물고기는 아기 물고기가 뭘 해도 다 좋대. 바다에 가도 되고 강도 좋고 시냇물도 나쁘지 않을 거야. 어항도 말이지.  
 
긴 방파제 앞에 나란히 서서 바다를 지켜보았다. 이야기를 마칠 무렵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강한 바닷바람에 제제가 두 팔을 벌리고 안아달라는 시늉을 했다. 
 
어느 휴일 오전, 
아빠 물고기는 아기 물고기를 품에 꼭 안고 푸른 하늘과 그 아래 바다 사이를 걸었다. 

 

#46개월 #제제 #아빠육아 #육아이야기 
#푸른하늘 #푸른바다 #그_사이를_걸었다
#아빠물고기와_아기물고기 
 

바다를 보러 갔어요.


푸른 하늘 그 아래 바다가 있었습니다.
가끔 제제는 바다에 가자는 말을 해요.
그럼 보러 가야죠.
무척 바쁜 날만 아니라면 흔쾌히 응합니다.
제제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를 짐작하고 있어요. 제 아들이기 때문일 거예요. 저도 바다를 좋아하거든요,
유명 관광지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땐, 바다로 가면 됩니다.
제제 또래 친구들의 아빠는 대부분 저보다 꽤 젊습니다. 저는 늙은 아빠인 셈이죠.
그래서 더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제제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제제와 함께 보고, 함께 먹고, 함께 노는 것은 제게 있어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저 웃는 모습을 보려고 새벽에 기를 쓰고 일어나 체력을 단련하고 귀찮음과 피곤함을 이겨내는 건지도 몰라요.
비록 나이가 꽤 많은 아빠지만 젊은 아빠들 못지않게 힘찬 모습으로 함께이고 싶습니다.
행복한 하루였어요.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면서 멋진 풍경을 함께 지켜보았죠.
우리는 늘 이렇게 살아요.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빠 물고기와 아들 물고기의 여행은 계속되겠죠?
저는 지치지 않아요.
지금이 제 인생의 전성기입니다.
어느 휴일 아침,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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