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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Apr 09. 2019

# 97. 나도 모르게 누가 날 조종하고 있었어

아빠 품이 좋으니 안겨있고 싶겠죠. 하지만 저도 기계는 아니다 보니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어요.

"아빠, 나 안아줘." 


"그럴까?" 


품에 안고 이십 분도 넘게 걸은 것 같은데 내려놓은 지 채 오 분이 지나지 않아 제제는 다시 두 팔을 벌렸다. 살펴보니 피곤한 기색은 없다. 오늘 제제는 아빠 품이 유달리 좋은가 보다. 피식 웃으며 자세를 낮췄다가 다시 제제를 번쩍 들어 안았다. 


"이제 걷는 게 어떨까?" 


"싫어, 계속 안아줘." 


또 한참을 안고 걷다가 내려주려고 하니 제제는 계속해서 안겨 있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이십 킬로그램인 녀석을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안고 걸은 셈이다.  


"자, 이제는 제제가 직접 걷는 게 좋겠어." 


"힝, 난 아빠가 안아주는 게 좋은데..., " 


결국 십여 분을 더 안고 걸은 다음에야 제제를 내려줬다.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어깨와 등은 저리기까지 한다. 여전히 칭얼거리는 제제를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요즘 제제랑 열심히 소풍을 다니느라 아빠가 조금 피곤한 상태야." 


얼굴을 마주하고 부르튼 입술을 보여주자 그제야 제제는 놀란 표정을 하고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에 힘을 잔뜩 준 채 아빠의 입술에 호호 입김을 불어주었다.  


"제제가 아빠를 조금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이제 씩씩하게 걸을 수 있지?"" 


"아빠, 나도 모르게 누가 날 조종하고 있었어. 그 사람이 잘못한 거야." 


"아니 아니, 잘못은 아냐. 아빠도 좋아. 다만 아빠가 조금 힘들어서 그래." 


자꾸 안아달라고 한 건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고 말하는 제제다. 머리에서 잘못하던 사람이 나갔으니 이제부터 열심히 걷겠다며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 뭐라고? 너도 모르게 누가 너를 조종했다고?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런데 웃어도 너무 많이 웃었나 보다. 부르튼 입술이 다 터져서 피가 배어 나왔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46개월 #제제 #아빠육아 #육아이야기 

#나도_모르게_누가_날_조종하고_있었어



아빠, 나도 모르게 누가 날 조종하고 있었어.


제제가 제게 건넸던 말입니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그렇게 말했어요.
그만 내려서 걷는 게 좋겠다고 말해도 듣지 않더니 부르튼 제 입술을 보여주자 제제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러더니 씩씩하게 잘 걸어 다녔습니다.


아빠 품이 좋으니 안겨있고 싶겠죠. 하지만 저도 기계는 아니다 보니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어요.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더니 제제는 금방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어요.
그리고 아빠의 부르튼 입술에 호호 입김을 불어주었죠.
나도 모르게 누가 나를 조종하고 있었대요. 하하하 정말 너무 많이 웃어서 부르튼 입술이 다 터졌어요.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습니다.
신나게 웃었더니 피로도 다 날아간 느낌이더라고요.
세상 부모님들이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부모님이나 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쉽지만은 않은 하루를 보내고 계실 겁니다.
그래도 내 아이 웃음에 한 번 따라 웃고 기운 내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와 아내도 마찬가지고요.
세상 모든 부모님들께 힘 팍팍 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루가 또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조금 피곤하기도 했지만 크게 즐거웠던 날이었어요.
아빠, 많이 피곤해? (아니, 많이 좋아졌어. 내일부터 더 독하게 운동할 거야.)
아빠, 이제 나를 조종하던 사람이 사라졌어. (하하하, 그래 그래 그 사람에게 아주 가끔씩만 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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