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화이트 데이'
'데이'가 참 많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해도 삼겹살, 짜장면, 장미, 빼빼로, 밸런타인이 있고 어제는 '화이트'란 이름이 '데이' 앞에 붙어 '화이트 데이'였다.
이런 걸 꼭 챙겨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데 그래도 그냥 지나치면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데이'가 되면 짧은 편지 한 통을 쓰고 간식 사 먹을 돈을 봉투에 담아 아내에게 건넨다. 그도 아니라면 정성껏 요리를 해서 함께 식탁에 앉는다거나 모은 용돈을 털어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늘 혼자 생각하고 준비하던 걸 이제는 둘이 한다. 태어나 응애응애 울기만 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제제는 어느새 사십육 개월이 됐다.
"엄마한테 편지 쓰고 싶어."
"그래, 짧게 써도 엄마가 좋아하실 거야."
'화이트 데이'에는 사탕을 주는 것도 괜찮지만 편지 한 통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더니 제제는 직접 편지를 쓰겠다고 나섰다. 더불어 나도 짧은 편지를 썼다. 전에는 한 통이던 편지가 이제는 두 통이다.
"제제, 엄마한테 용돈 드릴까?"
"응, 나도 엄마에게 용돈 주고 싶어."
엄마가 커피를 마시고 도넛도 먹을 수 있게 우리가 용돈을 건네자고 의견을 냈다. 흔쾌히 응한 제제가 용돈을 보관하는 서랍에서 천 원짜리 석 장을 꺼내 들었다. 나도 이만 원을 보탰다.
"나는 세 장인데 아빠는 두 장이네? 내가 엄마를 더 사랑하는 거야. 맞지?"
"그래, 그렇다고 해 두자."
그렇게 따지면 아빠가 너보다 일곱 배쯤 더 엄마를 사랑하는 거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얼마가 됐든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을 담았으니까 아내는 분명 기쁘게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 엄마에게 맛있는 간식도 사주자."
"우와, 제제 진짜 최고다."
편지와 용돈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제제가 마트에 가자며 현관으로 향했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마트에 도착해 제제를 함께 간식거리를 고르기 시작했다. 머핀과 캐러멜 한 봉씩, 감자칩과 팝콘도 카트에 담았다. 빙글빙글 진열대 사이를 돌면서 엄마가 좋아할 만한 걸 척척 골라내던 제제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몇 가지만 더 고르자는 생각에 제제의 의견을 물었다.
"제제, 엄마가 이것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 "
카트에 앉은 채로 잠든 제제를 조심스레 들어 왼팔에 안았다. 계산을 마치고 남은 오른팔로 장바구니를 들고서 마트를 나섰다. 푸른 하늘, 흐드러지게 피어난 매화꽃, 따사로운 바람, 세상에 봄기운이 가득했다. 잠든 제제를 안고 간지러운 봄의 거리를 걸었다. 왠지 아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의 '화이트 데이'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