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것
평일 해질녘엔 어디든 제법 한산하다.
어떤 이는 퇴근을 서두르고 다른 이는 저녁식사를 위해 주방에 설 즈음이다. 학원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집을 향해 지친 발걸음을 옮긴다.
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듯, 이때를 기다려 제제와 집을 나설 때가 많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길쭉한 산책로, 커다란 공원, 노을로 물든 강변 농구코트가 온통 '우리 것'이 된다.
"아빠, 달리기 시합하자."
"그럴까?"
신나게 달려 나가는 제제의 모습이 잔잔한 산책로 풍경과 맞물려 하나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뒤처질세라 나도 부지런히 달려 그 그림을 쫓았다. 군데군데 구름 얼룩이 진 귤빛 하늘이 곱다. 그 아래 길고 긴 산책로엔 우리 둘 뿐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가슴속까지 뻥 뚫린 기분이 들었다.
"개미들은 아직도 땅속에 숨어 있어?"
"글쎄, 우리가 한 번 찾아볼까?"
가뿐 숨을 진정시킬 겸 잠시 쉬기로 했다. 규모가 제법인 공원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곤충들의 흔적을 살폈다. 풀밭이나 돌 틈을 기웃거려봐도 개미는 보이지 않는다. 화단과 나무를 살펴도 움직이는 것은 없다. 서운함을 내비치는 제제를 품에 안았다. 비록 곤충은 보이지 않지만 이 커다란 공원을 우리가 통째로 가진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더니 제제는 금세 서운함을 잊고는 '공원은 우리 것'이라며 크게 웃었다.
강변 한 편에 위치한 농구 코트에도 들렀다. 마치 우리가 대관료를 내고 예약이라도 한 것처럼 코트 위엔 아무도 없다.
"아빠, 목말 태워줘."
"그래, 우리가 힘을 모으면 할 수 있을 거야."
열심히 림을 향해 공을 던지는 시늉을 하던 제제가 목말을 요청했다. 아빠의 어깨에 올라타 림 그물에 손을 뻗어보고 싶은 그 작은 소망을 들어주고 싶었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목말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아 제제의 허리춤을 단단히 잡고는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하늘로 뻗었다.
"제제, 닿았어?"
"응, 손가락만."
그저 림 그물에 살짝 손가락이 닿았을 뿐인데 제제는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 기뻐하는 제제를 내려준 다음 즐겁게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오늘 즐거웠어?"
"응, 여기는 전부 다 우리 거잖아."
어느덧 주위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멀리 산책로에는 하나 둘 사람들이 지난다. 이제 '우리 것'이었던 모든 걸 남겨두고 돌아갈 때다.
아주 잠시였지만 분명 여기는 '우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