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아 집에서 오 분이면 강줄기에 닿을 수 있다. 물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가 제법 긴 편인데 오가는 사람이 적어 제제와 자주 찾는 곳이다.
"아빠, 달팽이는 언제 다시 나타나?"
"호~하고 손에 입김을 불면 따뜻하겠지? 그 정도 따뜻해야 달팽이가 나타나는 거야."
해가 지면서 그 아래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제제가 갑자기 달팽이에 관해 물었다.
정확히 일 년 전에도 제제는 이곳에 서서 같은 질문을 했고 나도 비슷한 대답을 건넸다. 그날의 대화 덕분에 나는 제제를 데리고 적어도 며칠에 한 번은 이곳을 찾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온 강변이 초록으로 물든 어느 날 우리는 결국 달팽이를 만날 수 있었다.
"작년에 달팽이 참 많이 만났잖아. 기억해?"
"응, 내 손에 놓았더니 더듬이를 내밀었어."
제제의 작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달팽이들은 잔뜩 웅크렸다가 천천히 머리를 내밀었다. 긴 더듬이 하나, 짧은 더듬이 하나, 두 개의 더듬이를 모두 세운 채 마치 '얘들은 누굴까?' 살피는 듯한 녀석들을 보며 우리는 티끌 한 점 없는 웃음을 짓곤 했다. 촉촉하게 비가 내린 뒤엔 꼭 달팽이를 만나러 갔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지나며 꾸준히 보이던 달팽이는 겨울바람이 불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더불어 달팽이에 얽힌 우리의 이야기도 긴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봄이 찾아왔다.
강변 구석구석을 바라볼 때마다, 산책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마다, 제제와 쌓은 추억이 아롱아롱하다. 우리의 많은 이야기들이 계절을 지나며 차곡차곡 덮인 시간 아래에 곱게 누워 있다. 이제 추억 속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 잔뜩 묻은 흙을 털어야 할 때다.
"달팽이들도 제제를 만나려고 힘을 다하고 있대.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지?"
"응, 친구니까 기다려 줄게."
곧 만나게 될 달팽이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기대감으로 표정이 밝아진 제제는 산책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더니 이내 쭉 뻗은 길을 열심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올해의 달팽이 이야기에는 더욱 풍성한 내용이 담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