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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Apr 09. 2019

# 100. 달팽이 이야기

차를 몰아 집에서 오 분이면 강줄기에 닿을 수 있다. 물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가 제법 긴 편인데 오가는 사람이 적어 제제와 자주 찾는 곳이다. 


"아빠, 달팽이는 언제 다시 나타나?" 


"호~하고 손에 입김을 불면 따뜻하겠지? 그 정도 따뜻해야 달팽이가 나타나는 거야." 


해가 지면서 그 아래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제제가 갑자기 달팽이에 관해 물었다.  


정확히 일 년 전에도 제제는 이곳에 서서 같은 질문을 했고 나도 비슷한 대답을 건넸다. 그날의 대화 덕분에 나는 제제를 데리고 적어도 며칠에 한 번은 이곳을 찾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온 강변이 초록으로 물든 어느 날 우리는 결국 달팽이를 만날 수 있었다. 


"작년에 달팽이 참 많이 만났잖아. 기억해?" 


"응, 내 손에 놓았더니 더듬이를 내밀었어." 


제제의 작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달팽이들은 잔뜩 웅크렸다가 천천히 머리를 내밀었다. 긴 더듬이 하나, 짧은 더듬이 하나, 두 개의 더듬이를 모두 세운 채 마치 '얘들은 누굴까?' 살피는 듯한 녀석들을 보며 우리는 티끌 한 점 없는 웃음을 짓곤 했다. 촉촉하게 비가 내린 뒤엔 꼭 달팽이를 만나러 갔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지나며 꾸준히 보이던 달팽이는 겨울바람이 불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더불어 달팽이에 얽힌 우리의 이야기도 긴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봄이 찾아왔다. 


강변 구석구석을 바라볼 때마다, 산책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마다, 제제와 쌓은 추억이 아롱아롱하다. 우리의 많은 이야기들이 계절을 지나며 차곡차곡 덮인 시간 아래에 곱게 누워 있다. 이제 추억 속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 잔뜩 묻은 흙을 털어야 할 때다. 


"달팽이들도 제제를 만나려고 힘을 다하고 있대.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지?" 


"응, 친구니까 기다려 줄게." 


곧 만나게 될 달팽이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기대감으로 표정이 밝아진 제제는 산책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더니 이내 쭉 뻗은 길을 열심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올해의 달팽이 이야기에는 더욱 풍성한 내용이 담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제 #46개월 #아빠육아 #육아이야기 

#달팽이 #조금만_기다려 #제제를_만나러_찾아올_거야



아빠, 달팽이는 언제 다시 나타나? 제제가 물었습니다.


호~하고 손에 입김을 불면 따뜻하겠지? 그 정도 따뜻해야 달팽이가 나타나는 거야.
작년에는 달팽이를 참 많이 만났어요.
비가 내린 다음날 강변을 찾아가면 제제를 마중 나온 듯 풀숲에 달팽이가 가득했습니다.
달팽이의 긴 더듬이는 눈 역할을 하고 짧은 더듬이는 코 역할을 해. 제제와 달팽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자주 달팽이를 만나러 가서 즐겁게 놀았어요. 잠시 그렇게 관찰하다가 풀숲으로 돌려보내고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봄이 찾아왔지만 달팽이는 아직이에요. 강변 산책로를 걷던 제제가 달팽이를 찾길래 곧 제제를 만나러 올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제제와 함께 즐겁게 걸었습니다.
이곳에 쌓인 우리의 추억은 무수히 많습니다.
이제 그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서 흙을 털고 다시 새 이야기를 덧붙여 나가야죠.
언제나 우리는 함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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