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끼와 거북이
말하는 목적지는 이미 눈치챘지만 일부러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생각하던 제제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벼가 많이 자라는 곳을 지나갔어. 길이 엄청 울퉁불퉁해. 꼬불꼬불 도로를 지나 산도 넘어가야 돼. 그다음엔 강이 흐르고 강가에 나무도 많아. 그 강에 다리가 있는데 지난번에 그 다리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걸 아빠랑 봤어."
"음..., 기억이 날 것도 같은데."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정확하게 설명하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일부러 제제에게 *의뭉을 떨곤 하는데 모르는 척 잠자코 있으면 답답한 제제가 먼저 나서서 설명을 한다. 몇 개월 전에 비해 더욱 정교하면서도 유려한 답변이 작은 입술을 타고 술술 흘러나온다.
"그럼 동굴 안에는 뭐가 있는데?"
"기차 카페 위에 술병이 있고 동굴에는 산딸기랑 포도로 만든 술이 있어. 아빠도 좋아하는 술이랬잖아. 기억하지?"
"아! 이제 알겠다. 와인 동굴이구나."
가방에 필요한 물건을 넣고 간식을 챙기면서 힐긋 바라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 제제의 표정이 밝다. 친절하게 알려주어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천천히 제제의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고맙긴 뭘."
잠시 어깨를 으쓱거리던 제제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현관으로 달려간다. 왜 그러는가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다.
"해가 지면 동굴은 문을 닫는다고 그랬잖아. 빨리 움직여야 해. 아빠는 느림보 거북이야?"
"토끼야, 알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논 사이로 뻗은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가 꼬불꼬불 산길을 넘었다. 강변을 따라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고 기차가 지나던 긴 다리가 보였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저 멀리 기차 카페가 우리를 반긴다. 물론 그 위엔 커다란 술병 모형이 비스듬히 올려져 있었다.
모든 풍경이 토끼가 설명한 그대로다.
크게 감탄한 거북이는 토끼를 품에 안고 와인동굴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다.
*의뭉 = 겉으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면서 속으로는 엉큼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