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성했던 우리의 오후
봄을 타고 내린 잔비가 몇 차례 대지를 적신 후, 바싹 말랐던 강변은 조금씩이나마 초록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한 움큼 풀 무더기가 자라날 때마다, 나뭇잎 몇 장이 돋아날 때마다, 제제의 기대감도 그만큼 커진다. 풀이 제법 자랐으니 오늘쯤이면 애벌레들이 풀잎을 타고 나타나지 않을까, 나뭇잎이 쑥쑥 돋아나고 있으니 내일쯤이면 곤충들이 나무에 오르지 않을까, 제제가 상상하는 세상에는 이미 생의 기운이 넘쳐흐른다.
"아빠, 곤충이 있나 살펴보러 가는 건 어떨까?"
"날씨가 제법 추워. 제제야, 오늘은 쉬자."
곤충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산책하러 가자는 제제의 말에 난색을 표했다. 때는 바야흐로 봄이지만 아쉽게도 추위가 마지막 심술을 부리는 중이다.
"옷을 따뜻하게 입으면 되잖아."
"아빠 생각에는 우리가 따뜻하게 입고 나가도 날이 추워서 곤충을 만나기 힘들 것 같은데?"
"그럼 우리 둘이 그냥 산책하면 돼."
대안을 제시하며 물러서지 않는 제제를 보고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지금 제제는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다. 부푼 기대를 충족시키고픈 의지를 보이는 거라고 판단했다. 걱정부터 할 게 아니라 어떻게 입히면 더 따뜻할까 궁리하는 쪽이 훨씬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곤충을 발견하면 즐겁게 관찰하고, 보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함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제제 말이 맞다. 아빠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내 인생에서 오늘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제제와 함께인 오늘의 봄 역시, 오늘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즐길 수 없다. 내일은 내일일 뿐이니까.
차를 몰아 공원에 도착했다.
함께 걷는 길 화단 언저리에 군데군데 흙탕물이 눈에 띈다. 비가 내린 흔적일 뿐인데 그것이 마치 작은 연못이라도 되는 듯, 제제는 눈을 부릅뜨고 곤충의 흔적을 찾고 있다.
"제제, 그건 그냥 흙탕물이잖아."
안타까운 마음에 그냥 산책이나 하자는 말을 건네려는데 제제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뜻을 전했다.
"아빠, 여기 소금쟁이가 있어."
"정말?"
온 얼굴에 꽃 같이 환한 미소를 걸고 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급히 곁으로 다가가 살펴보니 소금쟁이 한 마리가 그 작은 흙탕물 위를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아빠, 내 말이 맞지?"
비록 날은 춥고 바람은 거칠었지만, 그 작은 소금쟁이 한 마리 덕분에 우리의 오후는 풍성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