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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5. 2019

# 10. 전속 미용사

가만히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제제는 이제 아빠와 함께 하는 이 '작업'에 익숙한 모양이다. 작은 떨림이나 긴장도 없이 아빠의 가위 놀림을 기다린다. 
 
직접 가위를 들어 아들의 머리칼을 손질하는 '작업'을 돌 무렵 처음 시작하고 벌써 몇 번의 계절과 해가 바뀌었다. 이제는 목욕 전, 내가 가위를 챙기면 제제는 욕조 곁 작은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곤 한다. 
 
처음부터 이상하리만큼 제제는 침착했다. 나는 결혼 전부터 십여 년 즈음 스스로 머리칼 손질을 해왔으니 가위를 잡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지만 내게 손질을 받는 제제의 차분한 첫 반응은 솔직히 꽤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에 아빠에 대한 신뢰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금칠을 하며 기뻐하기도 했다. 
 
그렇게 별 어려움 없이 시작된 우리의 '작업'은 단 한 번의 문제없이 지금껏 잘 치러지고 있다. 가끔 제제의 뒤통수 어딘가에 머리칼이 들쑥날쑥한 경우를 제하면 말이다. 
 
억지로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으니까 구태여 남의 손에 맡길 필요가 없었던 게 제일 큰 이유였다. 철 모르는 아이에게 윙윙거리는 전기이발기 소리를 참으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았고, 어른도 가만히 앉아 머리를 고정하고 있으면 좀이 쑤시는데 그 행동을 아이가 제대로 못한다 하여 꾸지람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컸다. 
 
우리 집 욕실 안에 차려진 미용실에는 그렇게 아빠와 아들의 '작업'이 요즘도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또 조금씩 흘러
이제 제제는 내 의젓한 고객으로 자리 잡았다.  
 
적어도 제제가 원하는 날까지는
제제는 나의 하나뿐인 고객.
나는 제제의 하나뿐인 전속 미용사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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