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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5. 2019

# 11. 그거면 충분해

제제가 백일 되던 무렵, 하던 일을 접고 전업주부가 되어 육아와 집안일을 맡았습니다. 제제는 이제 사십사 개월이 되었고 처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후 정확하게 만 삼 년 팔 개월을 지나는 셈이에요.
 
본가, 처가 모든 가족들의 배려와 사랑에 깊이 감사드리고 섣부른 조언이나 강요 없이 오로지 배려만을 주셨기 때문에 그 덕분에 제제를 이만큼 키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내가 저와 아들에게 보여준 가장으로서의 인내와 헌신에 진심으로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며 보잘것없는 아비의 생에 더없이 큰 기쁨을 준 제제에게도 너를 만난 건 행운이자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다정한 말을 넌지시 건네고 싶네요.
 
삼 년 전, 하던 일을 정리하고 육아와 가사라는 길에 들어서면서 이 길이 과연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까, 남자인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독이 되는 건 아닐까,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제 인생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난 삼 년이 행복했다는 겁니다. 
 
비록 제 경력은 잃었고, 이제 아이를 돌보는 마흔 중반의 늙은 아빠란 사실만 남았습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된 것 같기도 한 데다 세상사에 둔감한 산골 아낙처럼 산다 싶기까지 해요. 하지만 제 주변에서 흐르는 이 시간에는 아들이 있고, 아내가 있고, 저 역시 오롯하게 자리하고 있으니 그거면 충분합니다. 
 
각자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부모라는 이름으로 애쓰고 계신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 분들께 힘 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제, 늙은 아빠라 미안해.
그래도 아빠는 끝까지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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