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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5. 2019

# 12. 비 내리는 날의 약속

막 걸음마를 뗀 제제에게
빗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자동차 유리창에 부딪히는 톡톡톡 빗방울 소리나, 거실 유리창 너머 상황을 짐작하게끔 하는 탁탁탁 거센 장마 빗소리는 언제든지 들을 수 있으니까 시냇가에 나란히 앉아, 숲 전체가 비를 가지고 연주하며 흐르는 시냇물과 조화를 이루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었던 거예요. 
 
전에 살던 집은 산기슭에 위치해 있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내도 하나 끼고 있었는데 누가 설치했는지는 몰라도 숲과 시내가 만나는 지점에 나무 벤치가 하나 있었죠. 
 
2016년 비가 잔잔하게 흩뿌리던 어느 날, 유모차에 제제를 태우고 커다란 우산을 유모차에 꽂았습니다. 이리저리 비가 들이치는지 점검한 다음, 나무 벤치가 있는 시냇가로 향했어요. 조심스레 제제를 품에 안고 벤치에 앉았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는 녀석의 귓가에 속삭였죠. 
 
" 아빠가 하는 이야기를 너는 다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빠는 네게 이야기하고 싶어."  
 
시냇물이 흘러 수로와 강을 지나 바다로 가듯, 네가 걷는 길도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지고 길어질 텐데 그 변화의 시기마다 반드시 아빠, 엄마가 곁에 든든하게 서있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쫑긋거리며 저를 바라보는 제제의 눈동자엔 제가 고스란히 담겨있었으니 어쩌면 저는 제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약속을 한 것일는지도 모르겠네요. 
 
제제가 너른 바다로 가는 그날까지, 이야기는 계속될 겁니다. 누구와 맺은 약속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제제가 걸음마를 뗀 이후로 산책을 거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제제와 함게 매일 새로운 곳을 향해 함께 갑니다. 비가 내려도 눈이 와도 마찬가지예요.



늘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요즘도 똑같습니다. 제제와 함께 매일 짧은 나들이를 나섭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될 거예요. 약속을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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