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주인공이다
별 뜻 없이 나누는 대화라도 좋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아름다운 풍경은 다음을 기약해도 괜찮다. 고가의 장비로 찍은 멋진 사진이 아니면 또 어떠한가.
길가에 핀 꽃이나 풀, 또는 도롯가 가로수만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대화하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구형 휴대전화 하나만 들고 있어도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더욱 즐겁긴 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공원이라도 하나 존재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고, 좋은 카메라까지 들고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정색할 필요는 없다. 세상 일이라는 건 대부분 아쉬움을 싣고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나도 거기에 슬쩍 올라타 그렇게 아쉬운 듯 함께 흘러가면 그만이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계절의 변화 덕분에 같은 꽃, 같은 풀, 같은 가로수도 만날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 마치 매일 새로운 이야기와 사진이 가득한 책을 읽는 기분이랄까, 제제와 나는 그렇게 책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꽃 이름을 찾아보고, 풀의 모양을 서로 이야기하며,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깃거리다.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이더라도 우리가 만들어가는 책 배경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책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우리의 모습 또한 그곳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슷한 공간에서 나눈 이야기, 비슷한 공간에서 찍은 사진임에도, 우리의 책은 매 장마다 즐거운 이야기와 다채로운 사진으로 가득하다. 비록 별 뜻 없는 이야기일 뿐이고, 아름다운 풍경이나 멋진 사진은 아닐지라도, 그 책은 무척이나 특별하다.
바로 우리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