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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10. 2019

# 43. 행복하게 살아

꽤 오랜 시간 동안 한 사람을 후원했다.


한 아이가 초등학생이었던 때부터, 대학에 입학하던 순간까지 그 기간이 대략 팔 년이다. 그 아이의 일그러진 일상은 스스로 원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었다. 잠시 훈풍이 불었다고 해서 위태로운 삶이 말끔히 정상적인 궤도에 오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두고 최소한 먹고사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이어야만 했다.


기부금액이 부담스러운 수준이어서 그리 수월하진 않았다.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 생기면 새벽에 신문배달을 해야만 했지만 희망을 이어주고 싶었다. 내가 비켜서면 암울한 파도가 그대로 나를 지나쳐 아이를 덮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버텨야만 했다.

삼십 대의 대부분을 그렇게 달마다 돈 보낼 생각을 하며 살았다. 물론 여유로운 때도 있었다. 운이 좋아 벌이가 제법이었던 달엔, 그래도 내가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싶어 쓰디쓴 소주를 연거푸 삼키며 자축을 한 일도 있었으니 나름 좌우 균형은 적당히 잡혀있던 세월이었다.


한 번도 그 아이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혹여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는 메모와 함께 내가 오래전에 다니던 회사 주소와 전화번호를 그 아이의 친척에게 남겼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해마다 어버이날이 지나면, 함께 일하던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편지가 한 통 왔으니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정성스레 손으로 눌러쓴 편지를 한 글자, 한 글자 기쁘게 읽었지만 결코 답장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편지는 항상 고마움을 표하며 끝을 맺었다. 나는 늙은 총각이었고, 결혼할 생각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내 콧잔등을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사실 얼마간의 돈을 보내 누군가를 위로한 것에 비해 내가 받은 그 뭉클함은 더 큰 선물이었던 것 같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그 아이가 떠오르곤 한다.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그 아이에게 기쁨이란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 후원하는 것 이외에도 생일이나 매해 크리스마스엔 작게나마 선물을 보내곤 했다. 예쁜 촛불 사이로 환하게 웃고 있는 제제를 보고 있으면 그 아이는 그때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제제는 어느덧 다섯 살이 됐다. 셈을 해보니 그 아이는 이미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제제와 그 아이에게 한 마디씩 덕담을 해주고 싶다.
 

제제야,
부디 아무런 그늘 없이,
웃고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
아빠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아이야,
부디 아무런 그늘 없이,
웃고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
아저씨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쓰고 보니 두 녀석에게 바라는 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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