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chaelKay Jan 10. 2019

# 42. 한여름의 연극무대

# 2018년 7월의 이야기.


마흔세 살 한 명, 네 살 한 명,
두 명의 연극배우가 장독이 가득한 오래된 초가집 마당에 들어섭니다.    
 
이런 날씨에는 흙바닥도 아스팔트와 다를 게 별로 없어요. 제제와 마이클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폴폴 흙먼지가 날아오르며 더운 기운을 뿜어냅니다. 이쯤 되면 연극무대로는 안성맞춤이죠. 
 
잠자리는 지쳤는지 구석에 모아둔 장작 위에서 날개를 접었고, 새 몇 마리는 처마 밑에서 해가 떨어지길 기다립니다. 제제가 손에 쥔 아이스크림은 이미 더위에 울부짖으며 흘러내리고 있고요. 그러고 보니 무대 구성도 완벽합니다. 
 
"아빠, 아이스크림 먹어~" 
 
연극이 시작되고, 제제는 찐득거리는 손을 내밀어 마이클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넵니다. 손절 타이밍을 기막히게 잡는 모습이 마치 투자의 고수를 연기하는 것 같습니다. 
 
"제제, 고마워~ 잘 먹을게." 
 
"고맙긴, 뭘~" 
 
울며 겨자 먹기로 남은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어 한입에 삼키고는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제제의 입과 손을 닦아줍니다. 억울한 연기의 달인 마이클입니다. 살짝 얼어있는 물티슈가 좋았는지 제제가 벙긋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우리는 합이 잘 맞는 배우들이에요. 
 
"아빠, 고마워. 이제 시원해졌어~" 
 
"고맙긴, 뭘~" 
 
대사를 몸으로 체득한 연극 배우니까,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습니다. 늘 그렇듯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두고 끊임없이 입을 놀립니다. 날개를 접은 잠자리도, 밤을 기다리는 새들도, 녹아내린 아이스크림도 모두 즐거운 이야깃거리죠. 
 
제제가 장독대로 향합니다.
나란히 서있는 장독을 하나하나 살피더니 피식 웃으며 마이클을 바라봅니다. 
 
"아빠, 이 친구들 모자가 너무 작아." 
 
커다란 장독은 얼굴처럼, 장독 뚜껑은 모자처럼, 제제에겐 그렇게 보였나 봐요. 예정에 없는 네 살 연극배우의 애드리브 대사를 듣고 장독을 다시 보니 정말 그런 모습인지라 웃음을 참기 힘들어집니다. 
 
"푸하하하하!!!" 
 
껄껄 웃으며 장독 뚜껑이 왜 이렇게 생겨야 하는지 설명을 보태면서 연극은 끝이 났습니다. 마이클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잠자리는 놀라 날개를 펴고, 새들은 푸드덕 날아갑니다. 아이스크림은 마이클의 뱃속에서 춤을 추지요.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폴폴 흙먼지가 날아오르며 더운 기운을 뿜어냅니다. 그러나 처음 그 먼지 속, 연극무대는 사라지고 마치 그 모습이 푸른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처럼 느껴집니다. 더운 기운마저도 싱그럽습니다. 
 
하루하루 무척 덥습니다. 
그러나 제제와 마이클, 우리의 연극은 
푸르고 싱그러운 하늘과도 같지요. 
 
연극은 계속됩니다.
함께 하는 세상 모든 곳이 
우리의 무대니까요. 


어딜 가나 우리의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것도 우리의 공연이고
장독이 놓인 초가집 흙마당도 먼 훗날엔 추억으로 남을 우리의 무대죠.
함께 즐기는 모든 것에 우린 큰 행복을 느낍니다.
좁은 산책로를 거닐 때도, 작은 개미무리를 관찰할 때도 우린 진심으로 즐깁니다.
아빠, 장독 친구들은 너무 작은 모자를 썼어~ 하하하 정말 우스워!! 제제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저도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평소엔 전혀 좋아하지 않는 아이스크림조차도 제제와 함께라면 달고 맛있죠. 아빠도 조금 줄래? 싫어~ 안 줘~!!!
이렇게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해집니다. 우린 매일 세상이란 무대 위에서 우리 만의 즐거운 공연을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 41. 밤과 도토리가 많았던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