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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6. 2019

# 22. 미안해, 고마워, 다행이야

"미안해, 아빠 때문에 그래." 
 
콧물이 자꾸 나는 이유를 묻는 제제에게 그건 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감기에 이은 축농증 증상이긴 하지만 모든 것이 내 잘못 같다. 
 
"아니야, 내가 감기에 걸려서 그런 거야." 
 
위로에도 불구하고 그런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되려 제제의 어른스러운 말투가 더욱 가슴을 후벼 파는 기분일 때도 많다. 


나는 유아기 때부터 축농증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드나들었다. 한약을 먹었고 나름 비방으로 만들었다는 작은 콩알 모양의 한방치료제를 콧속 깊이 넣은 채 몇 개월을 보내기도 했다. 한약과 치료제에 들어간 비용이 당시 아버지의 월급 몇 개월분이라는 걸 보면, 부모님께서도 어린 자식의 치료에 필사적이었던 것 같지만 증상은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아빠, 콧물 뽑아줘." 
 
감기 증상으로 콧물을 흘리는 제제를 볼 때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 나 역시 내 부모처럼 필사적이다. 혹시 나처럼 될까 덜컥 겁이 나는 날엔 도구를 이용해 몇 번이고 계속해서 콧물을 뽑아주곤 했다. 혹여 콧속에 상처가 생길까 극도로 조심하다 보니 다행스럽게도 제제는 지금껏 코가 헐었던 적이 없다. 콧물 뽑아내는 걸로 대회를 연다면 나는 이미 국가대표급이 됐겠다는 우스운 생각마저 든다. 
 
"아빠도 아기 때 콧물을 많이 흘렸어?" 
 
"응, 아빠는 콧물 대장이었어."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던 것이 내가 육 학년이 될 무렵에 다시 심해졌다. 감기가 내게 아주 잠깐 스치기라도 할라치면 나는 거짓말을 좀 보태서 동네 개울물만큼이나 콧물을 흘리곤 했다. 때문에 초등학교 때는 감기 한 번에 몇 주를 꼬박 이비인후과에 들렀다. 그렇게 한동안 좋아졌다가 감기가 찾아오면 다시 심해지기를 반복했는데 수술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의사 선생님의 만류 때문이었다. 어릴 때 수술을 해도 재발의 여지가 너무 크고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낫는 경우가 많으니 기다려보자는 말을 했다. 
 
"아빠, 지금은 다 나았어?" 
 
"응, 어른이 되고 나서야 나았지." 
 
호전된 건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맞아떨어진 것인지, 질리도록 들렀던 학교 앞 학사주점의 소주로 말미암아 전신이 소독이 되어 그런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쨌든 성인이 된 이후로 이십여 년을 딱히 콧물에 시달린 적은 없으니 어찌 됐든 나은 셈이다. 
 
"이제, 콧물이 도망갔나 봐." 
 
"그래, 제제가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워." 
 
제제는 지난 한 달 사이 두 번의 감기에 시달렸다. 그 여파로 콧속에 많은 농이 쌓였던 것을 잘 이겨내고 오늘은 열흘간의 치료 끝에 다 나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젠 코감기 약만 하루 더 복용하면 끝이란다. 
 
"아빠, 왜 고맙다고 말했어?" 
 
"그냥, 모든 게 다 고마워서..." 
 
지난 열흘,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내 어린 시절을 깡그리 돌이켜보기까지 하며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 다 나았다는 진단을 받으니 감정의 변화는 모든 것이 다 고마운 쪽으로 흐른다.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참 다행이야. 

축농증과 씨름하고 이겨내느라 제제는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부어오르곤 했어요. 약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열흘이나 고생했지만 투정 한 번 부리는 일 없이 잘 이겨냈어요.
제제, 따뜻한 국물 먹을래?
매워~! 다른 거 먹을래. 음~ 그거 있잖아. 새우튀김도 있고, 돈카츠도 있고, 밥에 국물도 있는 거.
자주 찾는 라멘 식당이에요.
제제가 감기에 걸리고 다 나았다는 진단을 받을 때마다 여기 들르는 것 같아요. 제제 고생 많았다. 제니스도. 미안하고 고맙고 다행이다. 맛나게 먹자~
잘 먹었어요. 제제야 이제 이 겨울 내내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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