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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6. 2019

# 23. 아빠가 꾸며주는 아들의 옷차림

마이클은 일 년 내내 편한 복장입니다.
 
가끔 필요한 날 슈트를 꺼내기도 하지만 전업주부 남성에게는 그다지 많은 옷이 필요하지 않아요.

어렸을 땐 센스 있게 옷 잘 입는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습니다. 옷과 신발을 구성하는 감각은 제가 봐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이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되는대로 입고 손에 잡히는 대로 신어요. 일 년에 절반은 반바지에 반팔 티 차림이고 나머지 절반은 트레이닝복 긴 바지에 반팔 티 차림인데 날씨가 추워지면 여기에 점퍼 하나 더 걸치면 끝입니다.
 
새벽엔 운동하기 편한 복장, 남은 일과 중엔 제제랑 하루를 보내기에 거추장스럽지 않은 복장이면 충분하죠. 의도치 않은 미니멀리즘인데 그럭저럭 만족스럽습니다. 대신 제제를 입히는 일엔 신경을 제법 쓰는 편이에요.  
 
선물도 많이 받고, 사촌 형에게 물려받은 것도 많아서 제제는 옷이 참 많은데요. 그래도 분기별로 꼬박꼬박 새 옷을 사고 이리저리 조합을 해서 깔끔하게 입히려고 노력해요.


제제가 막 걸음마를 떼던 즈음부터 매일 산책을 다녔습니다. 제제 옷차림에 신경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정서가 꽤 많이 보이잖아요. 아빠가 아이를 돌보면 뭔가 엉성하고 빠뜨리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거요. 유머 영상에도 자주 등장하곤 하죠. 그래서 비록 아빠의 손길이지만 제제가 단정하고 예쁜 모습일 수 있도록 애를 썼습니다. 엄마가 딸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빗어 곱게 땋아주는 마음이랑 비슷할 거예요.
 

일단, 오전에는 어떤 옷을 입혀서 어린이집에 보낼지를 결정하고요. 오후에 제제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입었던 모든 걸 세탁해요. 매일 세탁과 건조가 반복되는데, 어른 옷과 구분해서 세탁해야 하고, 색깔이나 재질도 분류해야 하기 때문에 세탁기가 여러 차례 돌아갑니다. 옷을 아무거나 다 집어넣고 그냥 세탁기 작동 버튼만 누르면 되는 줄 아는 분들이 꽤 많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제의 모든 의류는 계절별로 용도에 따라 옷장에 정리가 잘 되어있는데, 입고 벗고 세탁하고 건조하면, 그 역시 제 자리에 잘 정리해야 하죠.

오후에도 선택과 결정은 계속됩니다. 가볍게 산책을 할 것인지, 제법 멀리 놀러 갔다 돌아올 것인지에 따라 오후에도 알맞게 선택해서 입힙니다. 함께 놀면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 속 제제의 모습을 다시금 살펴보다가 내일 입힐 옷을 떠올리기도 해요. 저녁에도 마찬가지예요. 외출 후, 돌아와서 다시금 평상복으로 갈아입히고 저녁시간을 보내지만 목욕할 시간이 되면 따로 넉넉하고 편안한 옷을 준비해서 잠자리가 편안하도록 신경을 써요.
 
모든 일과를 마치고 제제가 잠이 들면 그렇게 마이클 코디의 하루도 마무리가 됩니다.


이제 저도 반은 엄마가 된 것 같아요. 어느 날 함께 산책을 나설 때, 제제의 모습이 제 마음에 딱 들어차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면 그게 그렇게 흡족할 수가 없더라고요. 미소가 입에 자동으로 걸리죠. 남들이 보면 헐렁한 반바지에 다 구겨진 반팔 티 하나 입은 아저씨가 실성한 사람처럼 뭐가 좋은지 히죽히죽 웃는 모습이 아닐까 싶네요.



계절마다 제제의옷을 정리하고 매일 세탁하고 코디하는 것은 제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아빠가 꾸며주는 아들의 옷차림인 셈이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모자람 없이 옷을 준비합니다. 아빠가 육아를 하니 아이의 옷차림이 별로라는 말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빠, 스트레스 받지 말아~ 스트레스는 받는 건 아니고 조금 더 예쁘고 멋지게 입히고 싶어요. 아빠에게도 내 아이에게 옷을 잘 입히고픈 욕구가 있습니다.
제제 정말 작죠? 제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매일 함께 산책을 다녔어요.
아빠가 육아를 맡았으니까 조금이라도 허술하지 않게 입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꽤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선물도 많이 받고, 제제의 사촌형이 많이 물려줘서 옷은 늘 많았으니까 남은 건 제가 잘 조합해서 입히는 것 뿐이었어요.
필요하다 싶은 아이템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아내가 다 준비해줍니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많은 옷이 제제를 거쳐갔어요.
한 장, 한 장 지난 제제의 사진을 보면 그 때의 작은 생각이나 고민들이 떠올라요.
오늘은 어떤 옷을 입힐까? 오늘 날씨가 쌀쌀하니까 이렇게 입히고 모자도 씌워주자... 아빠!!! 내 옷 주문했어?
겨울에 입힐만한 외투가 많은데 그래도 한 번 사면 여유있게 입힐 수 있으니 주문했어요.
예쁜 옷 많이 사줘~ 제제는 예쁜 옷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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