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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6. 2019

# 24. 주크박스

# 2018년 9월의 이야기


노래를 잘하는 편은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못하는 노래일망정 제제가 신생아였던 무렵부터 보채거나 졸린 기색이면 그대로 안아 품에 끼고 마음을 담아 부르곤 했어요. 
 
한 곡. 
또 한 곡... 
 
부르다가 반응이 좋으면 그걸 기억하고 또 기억합니다. 그렇게 제제가 좋아하는 곡들을 따로 남겨두었다가 모두 차례로 이어 불러주곤 했어요. 하다 하다 나중에는 마음대로 개사해서 제제에 맞게 불러준다거나 아예 없던 노래를 즉흥적으로 지어서 불러주기도 하다 보니 아내가 음악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농담을 건네기도 할 정도였죠. 
 
그렇게 노래를 불렀어요. 적게는 하루에 수십 곡에서 많으면 수백 곡도 넘게 불러주던 노래를, 제제가 두 돌이 넘어설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제는 훌쩍 성장했어요. 하지만 요즘도 제제는 종종 아빠의 품에 안겨 가만히 어깨에 턱을 기대고는 미동도 없이 귀를 기울입니다.  
 
"아빠, 노래 불러줘." 
 
"동구 밖 과수원 길..." 
 
지금도 제제만의 주크박스는 버튼만 누르면 망설임 없이 언제고 작동합니다. 노래를 불러주는 내내, 나처럼 못난 사람도 아들에게 도움이 되는 아빠일 수 있구나 싶어 가슴이 꽉 차오르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
 
온 세상이 허브향으로 가득 찬 것만 같던 어느 산자락을 제제와 함께 걸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카시트에 앉은 제제가 오랜만에 아빠의 노래를 청했어요. 주크박스 버튼이 눌러진 셈이죠. 마이클은 운전석에 앉아 
길고 긴 노래를 불렀습니다

온 세상이 허브향으로 가득찬 기분입니다.
여기는 밀양시에 위치한 '참샘 허브나라'입니다.
제제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면 간식을 먹이거나 식사를 하게끔 한 뒤에 집을 나섭니다.
어디를 방문하든 관람객은 제제와 마이클 뿐입니다. 평일 늦은 오후라서 대부분의 경우엔 다른 관람객이 없어요.
사람들이 멸종된 거야? (사람이 없으니 제제는 이런 질문도 합니다.
단점도 있어요. 보통 가볼만 한 곳은 저녁 6시까지 운영하니까 둘러볼 시간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관람료 8000원이 아깝지는 않아요. 30분 남짓 돌아보고 왔을 뿐이지만 충분히 즐겼습니다.
제제와 함께라서 좋은 거잖아요.
한나절 내내 노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30분의 시간만 주어지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있었으니 이제 이곳은 우리의 추억이 담긴 장소가 된 것이겠죠.
그렇지 않았을 땐 한낱 이름만 아는 곳이거나, 그마저도 곧 잊을 이름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그곳에 들르기 전에는 그곳은 다만 하나의 단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들렀을 때, 그곳은 비로소 우리에게로 와 추억이 된 거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는 추억이 반갑습니다.
이렇게 보내는 하루하루가 무척 행복합니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이런 즐거움은 두 번 다시 누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생각합니다. 내가 전생에 어떤 일을 했길래 이런 행복이 찾아온 걸까 하고요.
계속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다짐을 매일 해요.
비록 30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반갑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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