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chaelKay Jan 07. 2019

# 30. 반성

2018년 1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이자,

제제가 32개월이었던, 어느 날 오후의 일입니다.


정확하게 적어야 할 글이 있었습니다. 다 쓴 후 오타는 없는지 살피고 있는데 제제가 다가와 장난을 치면서 휴대전화에 적었던 글이 모두 날아가버렸습니다.  
 
"아이 참... 아빠가 중요한 일 한다고 그랬잖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장난을 멈추게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생각을 짜내어 쓰던 걸 마무리했습니다. 확인 버튼을 누르고 돌아보니 짧은 순간이 지났을 뿐인데 제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제!" 
 
놀라서 두리번거리며 크게 소리를 내어 부르니, 소파와 에어컨 틈새에서 제제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아빠를 바라봅니다. 
 
"왜 거기에 들어갔어?" 
 
재빨리 다가가 제제를 품에 안으며 토닥였습니다. 그제야 제제는 커다란 눈망울을 아빠에게 돌리고는 아빠의 표정을 이모저모 살핍니다. 
 
"아빠가 화난 것 같아서 그랬어." 
 
순간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속 어딘가가 찡하고 아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잠시나마 어린아이에게 '아빠가 화났다'라고 느끼게 했나 싶어 자책을 했습니다. 지워지면 다시 쓰면 되는 일이고, 쓸 수 없으면 나중에 써도 될 일을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든, 상대가 그리 느끼면 그건 그렇게 느끼게끔 행동한 게 맞습니다. 더군다나 어른도 아닌 아이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아빠인 나의 책임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는 모자람투성이 아빠인데 그런 아빠의 감정도 살피는 아들이 참 고마우면서도 이제 아들이 많이 자랐고 사람의 감정을 살필 줄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 내 감정의 선을 쉽게 드러내면 안 되겠다 싶어 스스로에게 주의를 줬습니다. 
 
그릇된 행동은 따끔하게 야단칠 때도 있어야겠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가 위험한 장난을 치는 것은 엄한 어조로 막아서기도 해야겠지만  적어도 아빠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아이에게 아빠 눈치를 보게 해서야 어디 아빠 자격이나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짪은 1-2분 사이에 벌어진 일 하나에 제법 깊은 반성을 했던 하루였습니다.


아이 앞에서 쉽게 표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날이었어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제제입니다.
그로부터 1년 동안 제가 제제와 함게하면서 항상 떠올렸던 깨달음이었어요. 아이 앞에서 쉽게 감정선을 드러내지 말자는 것이요.


작가의 이전글 # 01. 마지막 낚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