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말미,
방한에 단단히 신경 쓰고 집을 나섰다. 납회를 겸해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을 준비했다.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남성 전업주부의 조촐한 취미 생활일 뿐이니 밤낚시는 꿈도 꾸지 못한다. 휴일 낮에 잠시 수로를 찾아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을 따름이다.
거창하든 조촐하든 항상 의미를 둔 일은 쉽게 흘러가는 법이 없다. 한낮이지만 기온은 영하에 근접해있고 바람은 거세게 불어댄다. 내릴까 말까 한참을 궁리하다 시동을 끄고 트렁크에서 낚시 장비를 꺼냈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갈대가 바람에 몸을 비트는 걸 제외하면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마치 정지된 영상과도 같았다. 추수가 끝난 지 한참 지난 논과 살얼음이 잡힌 수로 주위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곤 나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바람은 맹렬하게 귓가를 핥고 지난다. 낚시를 하기에는 지나친 풍속이지만 낭창거리는 낚싯대를 들고 서서, 바람 사이로 곱게 휘두르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바늘에 뭉쳐진 미끼는 춤을 추듯 바람 사이를 날아 물속으로 사라졌다. 여러 번 캐스팅하면서 바닥 지형은 충분히 살폈고 낮은 수온에 맞게 미끼도 배합했다.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던졌으니 이제 내 할 일은 충분히 한 셈이고 살피면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낚싯대를 받침틀에 거치하고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다가 삼켰다. 뱃속에서 온기가 느껴지더니 이내 온몸에 활기를 퍼뜨린다. 머리칼은 온통 바람에 흩날리고 귀는 꽁꽁 얼었지만 구태여 버티고 이기려 하지는 않았다. 한 자리에 앉아 때가 되면 한 모금씩 홀짝거리며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가끔 내 마음에도 이처럼 드센 바람이 불었다.
제제가 아플 때마다 가슴속을 스치던 애처로운 봄바람부터, 나 자신이 제제를 잘 보살피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의 바람, 그리고 녹록지만은 않은 삶이 주는 장맛비 속 거친 바람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지나치기 힘들었다.
바람 사이에 서서 궁리하고, 답을 구하려 애를 써도 정지된 영상 속에서 홀로 움직이는 사람처럼 변화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답답함과 조바심이 바람을 타고 날아들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런 바람 사이에 오래 머물다 보니 명석함과는 거리가 한참인 사람임에도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어차피 떠난 낚시, 바람 사이에서 낚싯대를 달래듯, 내 주변의 모든 바람을 대하는 데 유연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낚시 장비를 준비해서 낚시를 떠나 자리를 잡은 후, 낚싯대를 펼쳐 바닥을 읽어내고, 낮은 수온에 대비하여 미끼를 준비하는 것처럼, 어차피 내가 지나쳐야 하는 모든 일은 순리대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다만 바람이 불 때, 잠시 몸을 웅크리면 될 뿐이고 그 시간이 길면, 조금 더 자세를 낮추는 게 답이다. 미쳐 날뛰는 듯한 바람 너머로 원하는 곳에 미끼를 정확히 던지기만 하면, 나머지는 시간이 달라붙어 해결하는 영역이니 나는 그저 유연함을 꾹꾹 눌러 담으며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담담하게 시간을 보내면 애처로움은 어느새 잦아들어 기쁨이 남고, 의구심은 사라지고 확신이 자리 잡는다. 녹록지 않던 삶에는 그렇게 여유가 깃드는데 그러다 주위를 보면 바람은 어느새 완전히 멎어 있곤 했다.
찌가 살며시 오르내린다.
이 근방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 나 말고도 또 있던 모양이다. 한 마디, 두 마디 오르는 찌를 바라보다가 낚싯대에 가만히 손을 얹고 대를 들어 챔질을 했다. 이리저리 버티며 용을 쓰던 붕어가 수면으로 올라와 모습을 보인다. 물가로 끌어내 바늘을 뺐다. 펄떡이는 생명이 반가웠지만 이내 물로 다시 돌려보냈다. 낚시가 불가능했던 상황에서도 할 일을 하고 바람에 기대어 기다리니 결과가 나온다.
잠시 수로 주위를 수놓던 치열한 움직임이 사라지고 다시 정적만 남았다.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다시 주위를 휘몰아친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다. 빈 바늘에 다시 미끼를 달아 던지고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또 기다리면 되는 일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2018년의 마지막 낚시를 마쳤다.
2019년에도 내게 많은 바람이 찾아들 것 같다.
조금 더 웅크리고, 조금 더 자세를 낮출 요량이다. 지난 한 해, 기쁨과 확신 그리고 여유를 기다리며 바람 사이에 유연하게 설 수 있을 만큼이 됐다고 믿는다. 2019년의 말미에도 아주 조금은 성장했다며 자평할 수 있기를...
제제, 아빠는 준비가 됐어.
우리, 손 꼭 잡고 함께 걸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