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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6. 2019

# 29. 한글 공부

"아빠보다 더 많이 알고 싶어." 
 
수십 마리의 공룡 피규어를 거실로 들고 나온 제제가 미간에 힘을 잔뜩 주며 말했다.  
 
"어떤 걸, 아빠보다 더 많이 알고 싶은데?" 
 
공룡들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고 해양 동물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싶다며 제제는 열변을 토했다. 곤충이 왜 겨울엔 사라지는지, 연어는 자동차를 타지 않고도 어떻게 태어난 곳을 정확하게 찾아가는지(아마도 내비게이션이 없이도 잘 찾아가는 이유를 말하는 것 같다.) 아빠보다 더 잘 알고 싶다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빠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낀 모양인데, 그 의지가 대견해서 격려의 마음을 담아 엉덩이를 토닥였다. 
 
"책을 읽으면 아빠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어." 
 
"나, 책 많이 읽는데." 
 
"한글 공부를 많이 하고 혼자서도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해. 아빠가 설명하고 가르쳐주는 걸로는 아빠보다 더 많이 알 수 없어. 아빠도 모르는 사실이 책에는 다 적혀 있거든." 
 
처음 말하기 시작할 때도 그랬다. 무언가를 말해보라고 종용하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또래에 비해 말이 늦은 건 아닌가 생각한 적은 있지만 따로 걱정을 한 일도 없다. 다만 조금 더 재미있는 표정을 섞어 제제를 바라보며 말하고, 다양한 어휘를 넣어 표현하며 제제의 반응을 살피는 게 전부였다.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었지만 지치지 않았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만큼은 여유롭게 기다려줄 수 있는 아빠이고 싶었다. 
 
"아빠, 산책." 
 
"그래? 지금 아빠랑 걷고 싶어? 
아빠가 빨리 준비할게. 조금만 기다려 줄래?" 
 
어쩌다 나온 한 마디에 뛸 듯이 반가워하기를 몇 개월, 드문드문 의사를 표현하던 것이 대화로 이어졌다.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제제를 보며 마치 뮤지컬 배우라도 된 양 얼굴에 더 많은 표정을 담고 몸짓을 더했다. 그리고 움직일 줄 모르는 바위처럼 그저 기다렸다. 
 
"저기, 어떤 아저씨가 쓰레기를 길에 버렸어. 아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건 몹시 나쁜 행동이지? 지금은 용서해줄 거야. 그런데 자꾸 그러면 경찰 아저씨를 불러야 해." 
 
며칠 전, 장을 보러 마트에 갈 때 제제가 내뱉은 말이다. 이제는 본인의 의사를 아쉬움 없이 표현할 수 있다. 내가 먼저 노력하고, 가만히 참고 기다렸더니 그렇게 됐다. 말을 익혀가는 것도 그랬으니 한글도 가능할 거라고 믿는다. 제대로 가르칠 때가 됐다. 
 
이제 고작 44개월, 결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보다 더욱 내게 필요한 것은, 다채로운 재미를 담아주려는 뮤지컬 배우의 열정과 꼼짝 않는 바위처럼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가 아닐까 싶다. 
 
"우리 한글 공부 열심히 해서 
커다랗고 두꺼운 책 많이 읽어볼까?" 
 
"응! 읽고 싶어." 
 
"그래, 아빠가 끝까지 도와줄게.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말이야." 



지적 욕구가 급증하는 시기예요. 자음, 모음과 낱말카드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 건 아주 오래됐지만 제제에게 본격적으로 한글을 가르칠 때가 됐어요.


아이가 즐거워하는 걸 주제로 차근차근 시작하면 될 거예요. 말을 익히고 대화를 시작할 때도 그랬거든요. 섣부른 기대는 말끔히 지워야 해요.
아주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말을 무척 잘하기 때문에 한글도 감을 빨리 잡는 것 같아요. 참 다행이에요.
제제의 관심사를 가지고 즐겁게 함께 공부합니다.
제제가 흥미를 잃었다 싶으면 바로 멈추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요.
지치지 않게끔 제 자신을 잘 다스릴 거예요. 사실 그것도 무척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부모가 조급한 마음 없이 느긋해야죠.
한글에 흥미를 잃으면 재빨리 숫자로 넘어가서 놀아요.
다섯 마리, 오!!! 아빠, 오 맞지? 어떻게든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잘했어!!! 하이파이브도 하고, 주먹도 콩 마주치고, 엉덩이도 팍팍 토탁여줍니다. 안아주고, 머리칼을 쓸어주고, 마구 격려도 해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히 영리합니다. 아이들은 부족한 것이 거의 없어요. 부족한 건 부모의 노력이겠죠.
알파벳 놀이도 글자의 방향을 마구 섞거나 바꿔서 줘 보세요. 그냥 나열된 걸 보고 익히는 것보다 훨씬 빨리 익히고 즐거워 해요.
아빠, 이렇게 해놨다고 내가 속을 줄 알았어?
네가 웃으며 익혀나갈 수 있게 아빠가 도울게. 한글 공부 즐겁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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