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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7. 2019

# 32. 붙여 넣기

동네에 작은 공원이 참 많아요.  
 
공원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의 쉼터 같은 곳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제가 그 작은 공원들을 아끼는 이유는, 각 공원마다 자리 잡고 있는 나무의 종류가 다르고 꽃밭이나 산책로의 구성도 각자의 특색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 내내 제제와 함께 그 공원들을 번갈아가며 들렀어요. 계절마다, 공원마다 모두 그때그때 다른 모습과 분위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매번 들러도 질리지 않습니다. 작년 여름 초입엔 사람들이 '민들레 홀씨'라고 부르는 민들레 씨를 공원 곳곳에서 볼 수 있어 좋았죠.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 할까 봐요. 당시엔 이른 장맛비가 내려 민들레 씨가 모두 빗물에 씻겨 사라지는 건 아닐까 며칠을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만개한 상태의 민들레 씨가 우리를 반겨주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달리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던 제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작은 두 팔로 아버지의 커다란 등을 꼭 둘러 안은 채 그렇게 한적한 길을 한참 달리다가 오토바이가 멈춰 선 곳엔,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는 민들레 씨가 가득했죠.
 
"후~ 하고 불어봐."
 
다정하게 건네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지금도 제 머릿속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웃음이 걸린 아버지의 모습과 행동 하나하나까지도요. 어쩌면 저는, 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의 행동을 저장하고 복사해둔 뒤 긴 시간이 지나, 이제야 아들에게 붙여 넣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제제, 후~ 하고 불어봐."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제가 불었던 민들레 씨는 어디에서 다시 꽃으로 자랐을까요? 그렇게 바람에 날려 멀리 더 멀리,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김해까지 온 건 아니겠죠?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버지께서 제게 전하신 사랑 역시도 제 가슴 깊은 곳에서 단단히 뿌리내려 자라다가 이제야 꽃을 피우고 제제의 가슴속에 건넬 수 있는 씨앗이 되었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저는,
그렇게 아버지께 받았던 가슴속 씨앗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아들에게 붙여 넣기를 하고 있나 봅니다.
 
저장하기, 복사하기 그리고 붙여 넣기.
언젠가 제제도 그의 아이에게 똑같이 건넬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내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2018년 6월, 제제와 공원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자주 들르는 곳이에요.
민들레 씨가 있었죠.
저도 아버지와 민들레 씨를 함께 불었던 기억이 있어요. (2018년 6월, 제제입니다.)
제 아버지는 엄격하기도 하셨지만 다정하기는 그 몇 곱절인 분이셨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JJ에게 주는 사랑은 어쩐지 아버지께서 제게 주시던 사랑과 닮아있습니다.
시대와 환경, 문화가 달라졌을 뿐... 사랑하는 그 마음은 다 같겠죠.
적어도 제가 아버지께 받아온 사랑만큼은 꼭 JJ에게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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