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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8. 2019

# 36. 시작은 그림책이었다

아빠나 엄마를 부르는 것 이외엔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몇 안 되던 때부터, 제제는 그림책 속 물고기와 고래에 큰 관심을 보였다.
 
무작정 검색을 하고 해양동물 피규어를 구입했다. 어른인 내가 봐도 무척이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것들은 어린 제제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무게였는데 가격 또한 그 무게만큼이었다.
 
아기가 가지고 놀기엔 조금 과한 컬렉션인데? 솔직히 네가 갖고 싶어서 모으는 것 아냐?  
 
가끔 친구나 선후배들의 면박을 받으면서도 용돈을 아껴 하나, 둘 가짓수를 늘려갔다. 풍성해진 해양동물 수만큼이나 제제의 표정도 다채로워졌다.
 
작은 아기 욕조에 물을 받아 고래, 돌고래, 상어들을 넣었다. 그렇게 거실에서 놀다가 그림책을 펼쳐 하나하나 설명하곤 했는데, 제제가 알아듣지 못한 눈치여도 상관없었다. 마치 동물원 큐레이터라도 된 양, 더 큰 목소리, 과장된 표정과 몸짓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제제의 관심이 커지기라도 할라치면 복권에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신이 나서 재빨리 탭이나 티브이를 켜고 관련 영상을 지켜보며 함께 이야기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제제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여러 권의 책이 추가됐고, 많은 수의 피규어가 제제의 새 친구로 자리매김했다. 해양 동물들은 언제나 제제와 함께 움직였다. 목욕을 할 때나 놀 때, 그리고 잘 때, 제제는 하루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보냈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자랐다.  
 
"바다거북이랑 헤엄치고 싶어."
 
처음엔 작은 아기 욕조에 불과하던 그들의 무대는, 제법 커다란 어린이 욕조로 옮겨가더니 이내 동네 시냇가로 점차 그 영역을 늘려갔다. 다섯 마리에 불과하던 친구들은 어느새 백 마리가 넘는 수가 됐다. 작은 호수, 내가 즐겨 찾던 낚시터, 바닷가, 그들의 무대는 계속해서 넓어졌다. 제제가 꾸는 꿈엔 지금도 여러 가지 멋진 장면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얼마 전, 부산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다.
 
"엄마, 가오리 꼬리엔 가시가 있어. 조심해야 해."
 
투명한 유리 너머, 헤엄치는 많은 물고기의 대부분을 제제는 정확히 알고 있다. 지나치는 가오리를 보며 '만타 레이'라며 반가워하면서도 엄마에게 주의를 주는 걸 잊지 않는다. 지브라 상어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며 놀라기도 했다. 보트에 올라타 먹이를 줄 때도 두려움 없이 자기 세상인 것처럼 움직였다.
 
44개월이 된 제제는 어느덧 내 역할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마치 동물원 큐레이터라도 된 양, 큰 목소리,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제 엄마에게 설명해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언젠가 우리 앞에, 에메랄드 빛 바닷속 풍경이 펼쳐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돌고래에게 곁을 허락하고 바다거북이와 산호초 사이를 누비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했다.
 
네가 꾸는 꿈,
이제 내 꿈이 됐다.
 
우리가 꾸는 같은 꿈, 그 시작은 그림책이었다.


부산 아쿠아리움에 갔어요.
제제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해양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했어요.
많은 해양동물 피규어들이 제제의 친구였지요.
배를 타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자고 하니 엄청나게 기뻐했습니다.
전혀 겁내지 않고 설레임 가득한 표정으로 배에 올랐어요.
씩씩하게 먹이를 주고, 친구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했습니다.
백상아리가 없어서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무척 기분이 좋았대요.
기념으로 상어 이빨도 만져볼 수 있었죠.
44개월 제제가 이처럼 해양동물을 좋아하고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던 건, 그림책 덕분이었어요.
그림책을 보고 좋아하는 제제를 위해 피규어를 몇 마리 사주고, 함께 그림책을 보며 피규어를 가지고 놀았죠. 그러면서 관련 영상도 함께 봤는데 점점 관심을 가지더니 친구가 됐어요.


피규어 가짓수를 많이 늘려주고 점점 더 많은 해양동물에 대해 함께 공부했고요. 어디든 집을 나설 때마다 몇몇 친구들은 늘 제제와 함께였습니다. 시냇가, 작은 호수, 아빠의 낚시터.
그러다가 해양동물이나 민물고기에 관련된 학습관과 박물관도 참 열심히 찾아다녔어요. 민물고기 이름도 줄줄 꿰고 있어서 안내하시는 분이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기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욕도 함께 합니다. 물론 지금은 공룡이나 동물 피규어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번갈아가며 목욕에 참여하지요.
해양동물 피규어가 이 사진에 담긴 것보다 몇 배는 많아요. 하나하나 이름과 특징 그리고 먹이활동이나 생태에 관해 제제는 무척 잘 알고 있어요.
그런 호기심을 채워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제 강점이라면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니까 제제가 언제든 가자고 하면 그대로 차를 몰아 달려갔어요.
어린이집에서 끝나면, 준비한 간단한 간식을 먹이고 바로 출발해서 그렇게 여기저기 제제가 원하는 곳에 다녔습니다.
언젠가 제제는 바다를 보며 말했어요. 아빠, 나 바다거북이랑 헤엄치고 싶어.
제제가 꾸는 꿈이 이제 제 꿈이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에메랄드 빛 바닷속 풍경이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있죠.
제제야, 다음에 또 와~
우리는 언젠가 바다거북이와 함께 헤엄칠 겁니다. 꿈의 시작은 그림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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