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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9. 2019

# 37. 고구마

컵에 물을 담고 고구마를 넣어두었다. 
제제와 함께 기다렸지만 며칠이 지나도 싹이 나지 않았다. 그나마 기대감을 갖게 하는 건 물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빨아들이고 나면 언젠가는 싹이 날 테지. 마음속에 여유를 넉넉히 담고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르고 다시 조바심이 생길 무렵이 되어서야 고구마에 싹이 났다. 매일 확인하고 실망하던 제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함께 컵을 들어 살펴보니 고구마 밑동에는 덥수룩한 수염처럼 뿌리가 잔뜩이다. 성장에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뿌리를 튼튼히 하느라 긴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아빠는 콩나무를 키워서 
거인이 사는 하늘나라에 가봤다고 했지? 
 
자신은 콩나무 줄기가 아닌 고구마 줄기를 타고 거인이 사는 하늘나라에 가볼 거라며, 제제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내면서, 제제의 말처럼 고구마는 하늘까지 자랄 기세다. 줄기가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아침저녁으로 사진을 찍어놓으면 차이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니까 이제는 완연히 성장의 길로 접어든 모습이다. 
 
"이 정도 가지고는, 
아빠가 키웠던 콩나무만큼 자라기 힘들겠어." 
 
아빠의 장난에, 제제는 고구마가 담긴 컵에 물을 채워 넣기를 잊지 않는다. 
 
만사가 다 그와 같다. 준비를 단단히 한 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두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다. 고구마 줄기가 자라는 것이 그렇고, 제제의 성장도 같은 맥락이다. 더불어 고구마와 제제 모두를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 역시 마찬가지다. 
 
고구마와 함께 제제는 자라고 있다. 

나도 그렇다. 
 
이 겨울, 우리 셋은 성장하고 있다. 

고구마에 싹이 나기 시작하더니 마구 자라고 있어요.
이 고구마는 지난 10월초에 제제가 농장에서 캔 거예요.
이렇게 제제가 직접 노력을 담아 수확했습니다.


덕분에 고구마맛탕을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지요.
남은 녀석들을 보관해두었다가 12월에 컵에 담았습니다.
갑자기 한파가 밀려오고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시점이니 제제와 산책을 자주 나갈 수가 없어서 관찰할 것을 마련했죠.
제제는 고구마에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식물에도 물을 줍니다.
많이 자랐죠? 멋쟁이 제제가 물을 주니까 고구마가 많이 먹고 쑥쑥 자란다 했더니 제제는 자신도 많이 먹고 쑥쑥 자랄 거라고 다짐했어요.
아빠는 콩나무 줄기지? 나는 고구마 줄기 타고 하늘나라에 가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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