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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9. 2019

# 38. 제제에게 하얀 돈이 필요한 이유

장난감에 넣을 건전지를 사러 마트에 가는 길, 공기는 차갑고 바람은 매섭다. 몸을 굽혀 다시금 제제의 옷매무새를 살핀다. 머플러는 빈틈없이 둘렀는지, 털모자는 귀와 머리를 잘 덮고 있는지, 패딩 지퍼는 끝까지 올린 상태 그대로인지를 점검하고서야 바로 섰다.
 
"아빠 추워?"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몸을 부르르 떠니 제제가 나를 올려다보는데 커다란 눈망울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다.
 
"응, 아빠도 이제 김해 사람 다 됐다.
이 정도 날씨에 움츠러드니 이거야 원..."
 
내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대충 춥다는 뜻은 알아들었는지, 제제는 내 허리춤에 기대더니 호호 입김을 불어준다.
 
"아빠, 내가 따뜻하게 해 줄게."
 
건전지 한 묶음을 사들고 집에 도착했다. 제제의 외투를 벗겨 정리하고 우선 장난감에 건전지를  넣어야겠다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제제가 다가왔다.
 
"아빠가 건전지 얼른 넣어줄 테니,
잠깐만 기다려 줄래?"
 
장난감 놀이가 급하구나 생각하고 차분하게 말을 건넸지만 제제는 아직 벗지 못한 내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무얼 하나 지켜보니, 내 지갑을 꺼내 탁자에 놓는다.
 
"아빠 지갑은 왜? 필요한 게 있어?"
 
"응, 하얀 돈이 필요해."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제 손에 꼭 감아쥐더니 제제는 다시 그걸 거실 매트 밑에 숨긴다. 그제야 전부 생각대로 처리했다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어디에 쓰려고?
아빠에게 말해 봐. 필요하면 더 줄게."
 
"아빠가 춥다고 그랬잖아. 내가 짬뽕 사줄게.
아빠는 짬뽕을 먹으면 땀을 흘리니까 따뜻해질 거야."
 
가만히 돌아서서 탁자에 놓인 지갑을 들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제제에게 건넸다.  
 
"하얀 돈으론 부족해."
 
일부러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장난감에 넣을 건전지를 사러 집을 나섰어요.
아빠, 추워? 대충 입고 나갔더니 꽤 쌀쌀하더라고요.
건전지를 넣고 장난감을 신나게 가지고 놀 생각에 들떠있구나 생각했는데 아이들도 다 생각이 있더군요.
가로등 밑에서 아빠를 꼭 안아주더니 호호 입김을 불어줬어요.
아빠, 아직도 추워?
마트에 다녀오는 내내 춥냐고 묻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아니라고 대답했는데도 계속 묻길래 결국 춥다고 실토했어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 외투에 손을 넣더니 지갑을 꺼내더군요. 하얀 돈이 필요하대요. 제제는 천 원을 하얀 돈이라고 불러요.
왜 필요하냐고 물으니 망설이다가 아빠에게 짬뽕을 사주고 싶다고 말했어요. 아빠는 짬뽕을 먹으면 땀을 흘리기 때문에 그걸 먹으면 춥지 않을 거래요.
집 근처에 제가 무척 좋아하는 짬뽕 맛집이 있거든요.
오는 마음이 너무 고우니 저도 고운 마음을 한아름 보내야겠죠?
닭백숙을 겸한 닭죽이에요. 정성을 가득 담았죠. 제제는 아빠요리를 무척 좋아해요. 자... 이제 제가 짬뽕을 대접받을 차례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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