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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9. 2019

# 39. 나를 용서하지 말자

돌이켜보면 필연이었지만, 
처음 육아를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살아오며 늘 그랬듯, 육아도 그럴 줄로만 알았다. 우연과 우연이 만나 그렇게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듯 손쉽게 흘러갈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담담하게 나를 돌아보고 내가 선 위치를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제제는 지나치게 순조로운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어떤 날엔, 꼭 울고픈 기분이 된다.  
 
편도에 염증이 생긴 제제를 데리고 연이틀을 응급실에 방문했던 작년 가을에도 그랬다. 꼬박 사흘간 고열에 시달리다 결국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제제를 지켜보며 마음 졸이던 내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안쓰러운 마음에 손을 내밀었다가 강아지에게 손을 꽉 물린 것처럼 그렇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때면, 나는 꾸중을 듣고 벌 받는 어린아이 마냥 끅끅거리며 서럽게 울고 싶어 진다.  
 
그런 날엔, 
모든 상황이 나로부터 기인한 것만 같다.  
 
지난 며칠의 노트를 꺼내 점검하고 혹시 어린이집 하원 이후 바로 손을 씻기지 않았던 적은 없는지, 목욕 시간은 총 몇 분이었는지, 먹이는 일에 위생관리를 잘했는지 되짚어 본다. 
 
거기에 답이 없다면, 내 지나간 인생에서 '잘못했던 일'로 규정하고 있는 몇 가지를 끄집어내 대충 머릿속에 나열해놓고 깊이 후회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부모님을 슬프게 했던 일, 어떤 이에게 쏘아붙인 못된 말이나 누군가를 미워했던 경우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내가 쏘았던 날카로운 화살이 긴 원을 그리며 돌아와 내 아이를 아프게 만든 건 아닐까 의구심이 생긴다. 몸을 숨길 곳 하나 없는 벌판에 서서 피할 수 없는 비에 흠뻑 젖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람처럼 꽤 서늘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필연이다. 
 
내 주위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은 나로부터 기인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연을 기대하며 웃었고, 지레짐작으로 안심했다. 방심과 교만이 울고픈 기분을 초래했다는 걸 인정한다. 섭섭하리만큼 담담하게 나를 돌아보고, 가혹하다 싶을 만큼 내가 선 위치를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연이든, 혹은 우연이든, 육아의 길 위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것에 눈물 없이 마주 서려면, 내가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 
 
나를 용서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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