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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9. 2019

# 40. 제제가 바라보는 세상

마트에 가자는 제제의 요구를 흔쾌히 수락하고 함께 집을 나섰다. 함께 걷는 길,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음에도 하늘에 걸린 초승달이 제법 선명했다.  
 
"아빠, 저 달 이름이 뭐라고 했지?"
 
"초승달이야."
 
고개를 들어 한참 하늘을 바라보던 제제가 배시시 웃는다. 제제 스스로 무언가를 알아차렸다고 기뻐할 때 보이는 행동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마무리가 된 건지 궁금했다. 자세를 낮추고 곁에 쪼그려 앉아 제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보름달 하고 모양이 많이 다르지?"
 
"응, 보름달은 바위 모양인데 초승달은 가위 모양이잖아. 신기하게 생겼어."
 
가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다시금 바라보니, 제제는 자신의 손을 들어 모양을 만든다. 처음엔 두 주먹을 붙여 바위같은 보름달이라 설명하더니, 한 손을 들어 '가위, 바위, 보'중에서 가위 모양을 만들었다. 그렇게 보니 초승달이 진짜 가위 같다.  
 
장보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는데 제제가 초승달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마트에 가는 길에 크게 웃으며 칭찬하고, 머리칼을 쓸어주며 기특한 표정을 지었다. 제 딴에는 또 한 번 아빠의 격려를 받고 싶은 모양이다.
 
"이번에는 아빠가 초승달 보여줄게."
 
"응? 초승달이 어디에 또 있어?"
 
제제의 방에 들어가 거울을 보자고 재촉했다. 키에 맞게 설치된 작은 거울에 제제의 얼굴이 빼곡하게 담긴다. 가만히 거울을 보며 웃어보라 일렀다.
 
"잘 봐, 제기 제제 두 눈도 초승달 같지?"
 
"내 눈?"
 
나란히 얼굴을 기댄 우리가 거울 속에 있다. 제제와 내가 즐겁게 웃음 지으니 네 개의 초승달이 거울 속 하늘에 둥실 떠오른 것 같다. 이리 씰룩, 저리 씰룩 표정을 바꿔가며 한참을 놀았지만 우리의 눈은 계속해서 초승달 모양이었다.
 
깊은 밤,
제제가 꿈나라로 떠나고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었다. 메모장을 펼치고 쭉 써 내려가는 글엔 초승달에 얽힌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초승달이 하늘에 걸린 날.
제제는 초승달이 가위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정말 그렇다.
제제의 눈도 초승달을 닮았다고 말했더니 믿지 않길래 거울을 보여주었다. 즐거웠던 어느날 저녁의 이야기다.
항상 메모를 한다. 제제의 곁에 내가 있는 순간들은 메모와 사진을 통해 이곳저곳에 남김없이 저장된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덕분에 휴대전화와 컴퓨터가 열심히 일한다. 이 모든 글과 사진, 그리고 메모장들은 제제가 성인이 되면 전부 선물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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