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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11. 2019

# 46. 낮게, 더 낮게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라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라는 유아교육 전문가들의 조언은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음직한 이야기다. 바른 자세로 공부하면 성적은 문제없다는 말과 다를 것이 무어냐는 반론이야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눈높이를 맞추라는 것은 비단 동일한 높이에 시선을 두라는 의미뿐만은 아닌 것 같다.




"아빠, 바다거북이 이야기해줄까?"
 
"그래, 좋아."
 
어느 바닷가,
제제는 바다거북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바지에 모래가 묻는 걸 아랑곳 않고 한쪽 무릎을 꿇어 자세를 낮췄더니 제제는 내 눈을 바라보며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엄마 바다거북이는 모래에서 알을 낳아. 아기 바다거북이가 알에서 태어나면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건 힘든 일이래."
 
"왜 힘든데?"
 
자꾸만 갈매기와 게, 바다악어가 아기 바다거북이를 잡아먹어서 화가 난다는 제제를 보니 그날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우리는 바다거북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소파에 어깨동무를 하고 앉아 시선을 마주하고 거북이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마치 친구를 대하는 느낌이었다고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작심하고 가르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깨닫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저 곁에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바다거북이에 대해 이야기했을 따름인데도 보았던 영상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정리해놓고 나름의 의견도 제시했다.
 

내 자세가 낮아질수록 제제는 내게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는 걸 배웠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 내가 자세를 낮게, 더 낮게 가져가는 만큼 제제의 목소리는 더 명확하게 내 귓가를 울린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꾸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려서 바다거북이가 아파. 내가 꼭 지켜줄 거야.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그렇게 제제의 눈을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가 끝났음을 깨닫고 몸을 일으켜 바지에 묻은 모래를 털어냈다.  
 
작은 꼬마가 이어가는 이야기에 자세를 낮추지 않았다면 거북이 장난감이 갖고 싶은 아이의 하소연으로 들을 수도 있었다. 아빠가 내 이야기를 우선해서 들어준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제제는 그저 웅얼거리다가 말을 삼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너 때문에 밖에서 얼마나 자존심을 굽히고 일하는 줄 아느냐'며 아이 앞에서 푸념을 하는 부모를 TV 드라마에서 꽤 자주 볼 수 있다. 정작 드라마 속 그들에게 필요한 건,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아이 앞에서 자세를 낮게, 조금 더 낮게 가져가는 건 꽤 어렵다. 마음을 열고 낮은 자리에 임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제제가 거북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영상과 책을 보며 즐겁게 대화하고 함께 놀았을 뿐인데 작심하고 가르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기억하고 있더군요.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추라는 말은 비단 시선의 높이를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더 겸허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게 아이들인 것 같아요.


함께 바라보고, 함께 이야기하고... 친구와 가감 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아요.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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