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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13. 2019

# 47. 3주 차의 약속

# 2015년 5월, 제제가 태어난 지 3주


크게 불편한 것 없으면 잘 먹고 잘 자니 참 다행이다. 깨어나 눈을 떠도 두리번거리는 것이 전부일뿐, 제제는 혼자서도 잘 논다. 보채는 일 역시 좀처럼 없는 아이다. 잠시 찡그리다가도 원하는 것이 해결되 금세 평온을 되찾고 잠이 드니 순둥이도 이런 순둥이가 없다.

제제 곁에 모로 누워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본다. 아직 정확하게 사물을 볼 수 없는 시기, 그럼에도 제 가족인 아빠의 기운을 느끼는지 까만 눈동자를 부지런히 움직여 결국 내 얼굴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다.


입을 열어 나지막이 말했다.


제제야, 다른 아이들보다 잘하는 것 없어도 아빠는 괜찮아. 혼자가 힘이 들 때면 아빠. 엄마와 함께 하면 돼. 그래도 안되면 네겐 네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많은 가족들이 있어.
 
자랑할 일 안 해도 좋아. 네가 내 곁으로 와준 것, 그거 하나면 아빠는 평생에 걸쳐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자신이 있어. 네가 자라나는 그 과정을 존중하고 네 의견에 귀 기울일게. 물론 무엇이든 잘하면야 나쁠 것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무 문제없어. 뭐든 조금 늦게 깨우치더라도 괜찮고, 못하는 것 많아도 아빠는 좋아.

 
대신 네가 무럭무럭 자라나, 티 없이 맑은 어린이에서 유쾌함 가득한 청년으로 성장하고, 크게 모자람 없는 성인이 되는 그 과정은 오롯이 아빠와 엄마 몫이다. 네가 하고 싶은 게 많아지도록, 그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할 수 있도록, 우리가 네 곁에서 힘을 다해 도울게.
 
부탁은 딱 하나만 하려고,

입가에 웃음을 걸고 가족들과 더불어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그런 아들이 되어 줄래? 길고 긴 시간이 지나면 언제고 그런 날도 오겠지. 그때까지 우리 건강하자.


제제, 고맙다.
아빠는 네가 참 좋아.


낮은 목소리로 이어지는 아빠의 이야기를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제제가 방긋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속 어딘가에서 팽팽한 기운이 솟았다. 적어도 제제의 앞에서만큼은 절대로 지치지 않는 아빠이고 싶다. 태엽을 끝까지 감아둔 장난감 자동차처럼 언제나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다.


제제가 태어나고 삼 주가 흐른 어느 날, 나를 바라보는 제제에게 긴 이야기를 했다.
태엽을 끝까지 감아둔 장난감 자동차처럼 언제나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다.
44개월이 된 지금까지도 그 결심을 잊거나 어긴 적이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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