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chaelKay Jan 13. 2019

# 50. 17개월 내 친구

# 2016년 10월 - 제제, 17개월


하루가 다르게 자라더니, 제제는 이제 다양한 표현을 하게 됐다. 더불어 표현을 통해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도 잦아졌다.


자고 일어나면 수면등을 스스로 끈다. 장난감 보관함 앞에 서서 오늘 가지고 놀 장난감을 커다란 봉지에 담기도 하고, 거실에 머리카락이나 이물질이 보이면 야무지게 집어 들어 쓰레기통에 넣은 후 스스로를 칭찬하듯 박수를 친다. 식사를 마치면 키도 닿지 않는 주방 싱크대에 빈 식기를 넣으려고 까치발을 하는데 그러다가 음식물 찌꺼기를 바닥에 흘리면 티슈를 꺼내 닦는다.


내가 세탁을 하려는 눈치면, 세탁실 옆 구석에 놓인 본인보다 큰 세탁물 보관함을 질질 끌어 내게 가져다준다. 세탁이 끝나면 양말 몇 켤레는 본인이 널겠다며 건조대를 차지하는 건 물론이다. 목욕하자고 다정하게 말하면 금세 알아듣고 옷방 구석에서 아기욕조를 꺼내 욕실에 넣기도 하니 이 정도면 훌륭한 친구와도 같다.




"아빠."


손가락으로 대문을 가리키며 웃는 것은 산책을 가자는 의미다. 내 옷을 찾아서 가져다주는 건 빨리 가자는 뜻이니 서둘러야 한다. 빨대컵을 들고 와서 내게 내미는 걸 보니 마실 것도 준비해야 한다. 친구와 함께 하는 일은 언제나 바쁘다.


가방을 둘러메고 제제가 내민 손을 잡은 채 걸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건 나쁜 행동이라고 틈이 나는 대로 가르쳤더니 이제는 길가에 놓인 쓰레기를 집어 들어 내게 건넨다. 준비한 봉투에 담아 가방에 넣는 사이, 제제는 잘했다는 듯 내 엉덩이 어림을 툭툭 쳐줬다. 그게 뭐라고 괜히 으쓱한 기분까지 들었다.


하루 또 하루,

모자란 내가 최선을 담아서 쥐어짜듯 건넨 노력은 깡그리 잊었다. 그저 이만큼 자라준 것이 대견하고,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쪼그려 앉아 제제를 끌어안았다. 내일은 더 노력할 거라고 '17개월 내 친구' 제제에게 속삭였다.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이렇게 가방을 가지고 현관 앞에 두면 함께 산책을 가자는 의미입니다. 제제가 17개월 무렵이에요.
제제가 걸음마를 뗀 이후로 우리는 늘 함께 산책을 했어요. 많으면 하루에 서너 번, 길면 한 번에 두 시간씩 제제랑 걸었습니다.
힘들어하면 안아주고, 또 함께 걷고... 이 산책은 44개월인 지금도 계속되고 있죠.
매일 약속했습니다. 내일은 조금 더 노력하는 아빠게 되겠다고요.
당시 제제가 먹는 모든 음식은 아빠인 제가 요리했습니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재료 하나하나 전부 알러지 반응을 순차적으로 마쳤고 무른밥, 진밥,  일반식에 이르기까지 식사와 간식은 모두 아빠의 몫이었습니다.
17개월 무렵 먹던 음식들을 보니 웃음이 나요. 정말 필사적이었습니다.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어찌 하면 잘 먹일 수 있나...
덕분에 제제는 아무 문제 없이 잘 먹고 잘 자라 건강한 어린이가 되었어요. 지금도 아빠가 만든 음식 이외엔 맛이 없다고 그러니 보람(?)도 조금 느끼곤 합니다.
살면서 이때처럼 주방에 오래 섰던 적도 없었죠.
당시 17개월이던 친구 덕분에 지금 저는 요리를 무척 잘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 49. 아내의 생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