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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13. 2019

# 53. 미운 네 살

한 해가 시작됐다. 

제제 역시 네 살을 지나 다섯 살이 됐다. '미운 네 살'이라는 요즘 이야기가 무색하리만큼 제제는 별 탈 없이 지난 십이 개월을 보냈다.  

 
"아빠, 이거 만져봐도 괜찮은 거야?" 
 
공공장소에서 언제나 먼저 질문한 뒤에 행동하고, 떼를 부리는 일이 없으니 꾸지람이 필요하지 않다. 부모가 이야기하면 가만히 듣고 생각할 줄 알기 때문에 훈육을 빙자한 짜증을 낼 이유도 없다.  
 
"내가 실수한 것 같다. 아빠, 더 조심할게." 
 
세상에 나고 자라 그쯤이 되면 부모가 제시하는 것들의 틈을 비집고 슬슬 어깃장도 부리다가 고집도 피우기 마련인데 그러지 않는다. 때문에 '미운 네 살'의 기색이라곤 전혀 없는 제제를 지켜보다 보면 혹시 내게 스트레스나 정서적 억압을 받은 일이 있었나 싶어 지난 수개월의 하루하루를 역으로 되짚어보기까지 한다. 
 
어제저녁, 
지난 며칠 사이 감기와 몸살로 심하게 앓았으니 내 안색이 밝을 리 없다. 제제는 그런 내 얼굴을 살피더니 다가와 살며시 품에 안겼다. 두 팔로 내 목을 감싸 안고는 작은 손으로 등을 토닥여준다. 귓가에 입을 가져가길래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했는데 제제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제제가 태어난 이래로 지금껏 내가 천 번도 넘게 불러주었던 그 노래가 다시 제제의 목소리를 통해 내 귓가로 들어와 머릿속 어딘가를 강타했다. 아빠의 평온을 바라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제제의 고운 노랫소리가 가슴을 일렁이게끔 만들었다.  그렇게 노래는 추억이라는 악보를 타고 내 몸속을 흐르다가 결국 내 눈 밖으로 조금의 물방울을 밀어낸 후에야 멈췄다. 
 
"아빠, 내가 곁에 있잖아. 힘내." 
 
이제는 다섯 살 의젓한 형아가 됐다며 뽐내는 제제, 

지난 한 해, 단 하루도 빠짐없이 '고운 네 살'이었던 제제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모자람 투성이 아빠에게
넌 정말이지 최고의 아들이야.



아빠, 힘내!!! 내가 곁에 있잖아.
아빠 콧구멍을 후후 내가 불어줄게. 그럼 콧물이 다 도망갈 거야.
내가 재미있는 표정 지어줄게.
웃기지? 웃어야 아픈 것도 낫는 거야.
내가 또 웃겨 볼까? 잘 봐~ 이게 바로 아빠가 장난칠 때 짓는 표정이야. 똑같지?
어때? 아빠랑 똑같지?
좋아, 내가 애교도 발사할게~
어이! 마이클, 내가 이만큼 했으면 이제 얼른 나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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