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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13. 2019

# 54. 낚시와 육아

어느덧 낚시 경력이 20년을 훌쩍 넘었다.  
 
남보다 낚시를 잘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남과 비교하려고 낚시를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스스로 만든 채비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고 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정도면 내겐 충분하다.
 
낚싯대에 달린 낚싯줄과 찌, 봉돌, 바늘을 부담 없이 조합하고, 미끼를 계절과 상황에 맞게 운용하며, 바닥 상황과 날씨를 살펴 낚시를 하게 되었다. 물고기가 따라와 주면 확신이 들어 즐겁고, 아닐 때엔 물고기가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 그뿐이다.
 
물가에 앉아 준비한 텀블러를 들어 커피 한 잔과 주변 풍경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낚시다. 때문에 되도록 가볍게 떠나서 쓰레기만큼은 무겁게 담아오는 것이 내겐 물고기 몇 마리 더 잡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됐다.  
 
내가 낚시 초보일 때,
늘 내게서 벌어지던 실수, 시행착오, 판단 오류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조급한 마음이 들었으며 미련이 남곤 했다. 초보니까 그랬다. 잘 알지 못하니 실수를 했고, 그러다 보니 시행착오를 거치기 마련이었다. 무언가를 판단할 수준이 아니니까 자꾸만 오류가 생겼는데 잘하고 싶었지만 기다리기 힘들었고 요행을 바랐다.
 
그렇게 제법 오랜 시간 낚시를 해왔다.
어쨌든 지금 나의 낚시가 옛날보다 조금은 나아질 수 있었던 건 그런 과정이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이다.  
 
흔넷,
그리 길지 않은 인생에서 배운 것 중에 꽤 많은 부분이 낚시로부터 기인했다. 아직 철부지 같은 감성에 뜬금없는 고집도 존재하지만 그래도 이제 조금은 교만함을 버릴 수 있게 되었고 반성도 어느 정도 할 줄 안다. 소소한 성격, 행동거지의 변화도 그렇지만 낚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건 신기하게도 육아다.
 
함부로 나서지 않고 기다릴 줄 안다는 점이 그렇고, 쉬이 바라지 않는 마음도 쌓인다. 나와 내 주변의 삿된 것을 먼저 정리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야말로 낚시의 기본인데, 아이를 대하는 것도 그와 같다고 느낀다. 그 덕분에 육아에서는 적어도 조급한 마음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 애를 썼다.
 
요즘도 가끔 두어 시간씩 짬 낚시를 즐긴다.
조용히 떠나 생각을 정리하고 돌아온다.
 
얼마 후면 또 낚시를 떠나겠지.
그때는 초보 낚시인의 열정과 완숙한 낚시인의 여유를 동시에 담아 돌아오고 싶다. 그런 시간들이 조금씩 쌓여 나는 아내보다 한 발 먼저 움직여주는 열정적인 남편이자, 조금 더 여유롭게 아이를 지켜봐 주는 아빠가 될 거라고 믿는다.
 
물론, 가족이 필요로 할 때는
언. 제. 나. 출. 조. 금. 지.



자동, 수동 장난감 낚시 세트를 모두 가지고 있는 제제인데 색다른 방식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아내가 가위로 색지를 자르고 클립을 끼워 다양한 어종을 확보해줬습니다.
아빠, 내 솜씨 어때? 난 상어도 잡는 어린이라고!!!
아빠~ 이것보다 큰 붕어를 잡기 전에는 돌아오면 안 돼!!!
지난해 늦가을, 어느 오후에 짬 낚시를 다녀왔습니다. 낚싯대를 펼치고 있는데 제제도 집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더군요. 아내가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제제는 이미 집에서 여러 마리를 낚았으니 나도 손맛 좀 보자 싶었어요.
손맛보다 우선인 것은 쓰레기 수거죠. 지난번, 분명 20리터 쓰레기봉투에 가득 찰 정도로 청소했는데 또 그 장소가 더럽습니다.
하늘은 이렇게나 맑고 풍경은 시리도록 깨끗한데 말이에요.
쓰레기봉투 하나로는 모자라서 20리터 쓰레기봉투를 하나 더 꺼냈습니다.
어쨌거나 깨끗하게 청소하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조용히 낚시에 집중했습니다.
물고기를 낚으려는지 수면 위에 떠다니는 구름을 낚으려는 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물가에 앉아있으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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