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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14. 2019

# 56. 솔방울 던지기

해마다 겨울이면,
제제와 즐겨하는 놀이가 있다.
 
남들이 보면 피식 웃을 법도 하지만 우리에겐 햇수로 삼 년째 이어오는 나름 소중한 약속과도 같은 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놀이란 다름 아닌 '솔방울 던지기'다.
 
"비가 내려야 하는데..."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제제의 바람은 거짓말처럼 이루어졌다. 그렇게 꼬박 하루 동안 겨울비를 지켜보다가 다음날이면, 제제의 손을 잡고 동네에서 줄곧 보아오던 소나무를 찾아간다. 소나무 밑동을 잘 살피면 촉촉하게 젖은 솔방울을 한 움큼 주울 수 있고 그것이면 준비물은 모두 챙긴 셈이다.
 
사람이 없는 공터에 서서 제제가 먼저 솔방울을 던진다. 솔방울 하나 던지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더 멀리 던지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가 아니다. 서로가 던진 솔방울에 가장 가깝게 던지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자, 이제 아빠가 던질 차례야."
 
내가 한 번 던지면, 다시 제제가 한 번, 또 내가 한 번, 제제가 먼저 던져둔 솔방울 주위로 몇 개의 솔방울이 모여든다.  
  
처음 이 놀이를 시작하던 이 년 전, 막 세 살이 된 제제가 던진 솔방울은 등 뒤나, 옆으로 향하기 일쑤였고 바로 던지는 건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제대로 방향을 잡아 던진 것도 코앞을 벗어나지 않았다. 네 살 때엔 조금 달랐다. 멀리 뻗지만 않았을 뿐, 솔방울은 늘 정면을 향했고 마운드에 오른 투수처럼 가끔 제제가 멋들어진 자세를 보일 때면, 나는 야구장을 찾은 관중처럼 두 팔을 들어 목청껏 응원을 하곤 했다.


제제는 다섯 살이 됐다.


냅다 팔을 휘두르는 모양이 이제는 제법 그럴싸하다. 솔방울을 들어 잔뜩 몸을 뒤로 젖혔다가 튕기듯 던지는 모습이 어디서 공 깨나 던져본 사람 같다. 서너 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날아가는 솔방울을 보고 있노라면 처음 솔방울을 던지던 제제의 작은 뒷모습이 떠오른다. 내 차례인 걸 까맣게 잊은 채 가슴속 어딘가에 담긴 추억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다가 제제의 잔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아빠, 빨리 던져."


"아빠가 이번에는 더 높이, 더 멀리 던져 볼게."


솔방울을 들고 심호흡을 한다. 왼다리를 들어 앞으로 내딛으며 팔을 힘차게 내저으니 내 손을 떠난 솔방울이 허공을 가르며 높이 날아오른다. 멀리, 더 멀리, 제제는 날아가는 솔방울을 바라보며 탄성을 내뱉는다.


눈부신 햇살 아래, 언젠가는 제제 그리고 제제의 아이와 함께 셋이서 솔방울을 던지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또 하나의 꿈이 내게서 시작되고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엔 더 많은 솔방울이 필요할 것 같다.



아빠, 우리 솔방울 던지기 하자. 매해 겨울이 되고, 겨울비가 내리면 소나무 밑을 찾아갑니다.


솔방울을 한 개, 두 개 찾아 손에 쥐고 더 많은 솔방울을 구하러 돌아다녀요. 도토리가 보이면 도토리도 줍지요.
벌써 햇수로 삼 년이 됐어요. 솔방울 던지기 놀이를 시작하고 해가 거듭될수록 제제는 더 높이, 더 멀리 던질 수 있게 됐습니다.
그저 솔방울 하나를 던져놓고 그 솔방울에 가깝게 던져보는 놀이임에도 제제는 무척 즐거워합니다.
처음엔 던지고, 뛰어가서 줍고, 또 던지기를 반복했지만 지금은 우리만의 규칙이 생겼습니다.
이제 슬슬 글러브와 공을 준비해야겠어요. 캐치볼을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함께하다 보면 언젠가는 야구 선수들처럼 멀리서도 공을 주고받을 수 있겠죠?
그렇게 더 높이, 더 멀리 던지게 될 날은 반드시 올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제제, 제제의 아이와 함께 셋이 던지는 날이 오겠죠.
그땐 다시 솔방울을 잡게 될 겁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솔방울이 필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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