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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15. 2019

# 05. 어느 흔한 남자의 흔치 않은 프러포즈

2014년 늦가을,
 
그림을 그렸다.
 
시간을 들여 고집스럽게 계속하는 것,
내가 잘하는 거라곤 다 그런 것뿐이다. 타고난 재능 따위가 내게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텨가며 끝을 보는 게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서 제법 긴 시간을 두고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배운 바 없는 조악한 실력이지만 정성을 담아보려 애썼다. 그렇게 한 장씩 완성된 그림을 조심스레 액자에 넣었다. 곱게 접어 편지봉투를 만들기도 했다.
 
편지를 썼다.
 
글 잘 쓰는 재주는 없다. 허나 그러면 그런대로 진실된 마음을 담으면, 그녀에게 전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연습 한 번 없이, 일체의 첨삭 없이, 그냥 담담하게 생각하는 바를 적었다.
 
한 장, 두 장, 페이지가 늘어났다. 써놓고 보니 로맨틱과는 한참 거리가 먼, 보고서 스타일의 편지였다. 그래도 좋았다. 그녀는 건조한 문장 사이에 깃든 내 마음을 전부 알아볼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프러포즈를 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조금은 부끄럽고, 약간은 낯간지러운
어느 흔한 남자의 흔치 않은 프러포즈였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멋진 선물과 함께한 프러포즈는 아니었다.
내가 잘하는 거라곤 시간을 들여 고집스럽게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림을 배운 바 없으니 무척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
나름의 최선은 쏟아부었지만 결과가 그렇게 흡족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리고 또 그렸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을 하나하나 액자에 넣었다.
곱게 접어 편지봉투를 만들기도 했다.
잘 쓰는 글솜씨는 아니지만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썼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로는 지칠 때도 있었고, 내게 재능이 없음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래도 좋았던 건, 내가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과가 어떻든, 내가 담은 진심만큼은 그녀가 알아볼 거라고 믿었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을 뿐이다.
어느 흔한 남자의 흔치 않은 프러포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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