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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17. 2019

# 57. 젖소가 이사를 한 거야?

"아빠는 어디서 태어났어?"
 
함께 교육 영상을 시청하다가 제제가 질문했다.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인데, 부모의 사랑을 빼앗긴 것으로 여겨 샘을 내던 한 아이가 결국 동생이란 존재를 받아들이는 내용이다.  
 
동생을 낳아달라든가, 동생이 생기는 게 싫다든가, 제제의 반응은 둘 중 하나일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영상을 다 본 다음, 제제는 아빠의 출생지부터 물었다. 의외의 질문이었다.
 
"서울이란 곳에서 태어났지."
 
"서울?"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다. 서울이란 도시에 대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중에서 서울과 연관된 무언가가 떠오른 눈치였다.  
 
그게 무얼까 궁금했다. 보통 제제는 책이나 영상을 접하면 이런 식으로 예상 밖의 질문을 한다. 그러면 나는 더 폭넓은 내용을 가지고 대답을 해왔다. 제제의 반응을 지켜볼 요량으로 내 출생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쭉 이어간 지 몇 분이 흘렀다. 제제가 원하는 내용은 없는 모양이다. 다섯 살 어린아이 입장에선 꽤 답답해할 상황인데도 섣불리 아빠의 말을 끊지 않는다. 그 모습이 기특했지만 내 쪽에서 먼저 말을 멈췄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픈 건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제, 서울은 왜? 궁금한 게 생겼어?"
 
"응, 아빠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이사 온 거지?"
 
"그렇지."
 
제제는 그제야 느긋하게 문답을 시작한다. 대화의 끝에는 도대체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의중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나는 계면쩍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묻는 말에 순순히 답변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젖소도 서울에서 태어났어?"
 
"응? 젖소?"
 
"내가 먹는 우유 이름이 서울우유라고 아빠가 그랬어. 그런데 젖소가 우리에게 우유를 주는 거잖아. 그럼 서울에 사는 젖소도 여기에 이사 온 거야?"
 
하, 바로 이거다. 제제가 서울이란 단어에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보이던 이유, 그걸 알아내는데 무려 이십여 분이 걸렸다.  
 
꽤 오래전부터 우리는 칠판에 자음, 모음 자석 글자를 붙이며 놀곤 했다.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것의 이름을 한글로 보여달라는 제제와 함께 직접 우유팩, 요구르트 병, 치즈 포장지 등을 놓고 칠판에 같은 글자를 만들었던 경험도 많다. 그때 우유팩에 쓰여있던 서울우유라는 글자가 어느 날 뜬금없는 연결 과정을 통해 되살아난 셈이다.
 
서울우유의 남도 거점이 경남 거창에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유통에 대한 설명은 한참 더 자란 후에 해주기로 했다. 재미를 담아 흥을 북돋워주는 게 우선이다.   
 
"제제 생각이 맞아. 서울에 사는 젖소가 우리 제제한테 우유를 주려고 여기에 이사 왔나 봐. 그런데 부산이란 도시에도 젖소가 살아. 그럼 그 젖소가 주는 우유는 이름이 뭐게?"
 
"부산우유"
 
잠시 생각하던 제제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됐다. 걸려들었다. 이 정도면 역으로 제제의 상상력에 침투할 수 있는 기틀은 마련했다. 건국 대학교, 연세 대학교에 다니는 똑똑한 형아 소들도 우유를 준다며 썰을 풀다가, 빙그레 웃음 지으며 우유를 주는 소 이야기랑, 매일 우유를 주는 소 이야기도 덧붙였다.
 
"우리, 전부 다 한 번씩 마셔 볼까?"
 
"응, 좋아."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척척 알아듣는 아들이 있으니 아빠의 입은 쉴 줄을 모르고 나불댄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한참 동안이나 계속됐다.
 
아마 제제의 상상 속에는, 수없이 많은 소들이 자기가 먼저 제제에게 우유를 주겠다며 다투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젖소가 떼를 지어 이사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음머어~~~"


어느 날 제제와 대화를 나누다가 서울 이야기가 나왔어요. 서울이란 도시에 대해 궁금한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서울이란 이름이 들어가는 우유 브랜드를 떠올리고는 서울에 사는 젖소가 제제 자신에게 우유를 주러 이사 온 거냐고 묻더군요. (사진출처: 서울우유 공식 블로그)


아이들의 상상력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유를 주러 젖소가 서울에서 김해로 이사를 온 거라니... 하하하하 웃겨서 쓰러질 뻔했어요.
각종 우유 브랜드 하나하나 전부 마셔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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