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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20. 2019

# 61. 우리의 로드무비


지난 사진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클라우드에 접속했다.


네트워크 세상 속 어딘가, '제제의 집'이라고 이름 붙인 그 폴더 앞에 가만히 다가가 선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이렇게 제제의 집 앞에 설 때마다 입가엔 미소가 걸리고 가슴은 조금씩 두근거린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마치 초인종처럼 크게 울린다. 기다렸다는 듯, 활짝 문이 열린 그곳에는 제제의 앨범이 가득 자리 잡고 있다.

앨범 하나를 열었더니 지난 삼 년, 각기 다른 여름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한 장, 또 한 장, 경쾌하게 사진들이 스쳐지나고 사진마다 담긴 추억을 떠올리며 내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2016년 여름,


가만히 손을 뻗어 나뭇가지에 앉은 잠자리를 낚아챘다. 날개가 다치지 않도록 잠자리 몸통을 살짝 잡아들고 유모차 곁으로 다가갔다. 이제 갓 돌을 지난 제제에게 자세를 낮추고 잠자리를 보여주었다.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진 제제를 바라보며 잠자리의 모습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알아들을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그저 그렇게 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자, 이제 얼마나 멋지게 날아가는지 보자."
 
잠자리가 날갯짓을 하며 두둥실 떠오르자 제제는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다. 날아가는 잠자리와 푸른 하늘이, 즐거워하는 제제의 표정이, 가슴속으로 하나하나 날아들어 선명하게 박혔다.  


2017년 여름,


따가운 햇살도 더운 공기도 아랑곳 않는다. 마을 어귀에 자리한 텃밭으로 열심히 뛰어간 제제는 방울토마토와 가지, 호박 등이 자라는 밭고랑 사이를 돌아다닌다.


"아빠, 잠자리!"


제제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리니 옥수수 잎사귀에 잠자리가 앉아 있다.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따로 시키지 않아도 제제는 긴장감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가만히 서서 기다린다.


오른손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잠자리의 시선을 분산시키면서 왼손은 슬그머니 뒤편에서 잠자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는데 간발의 차이로 잠자리를 놓쳤다.


"아빤 바보야!"


"하하하, 제제야 아빠가 미안해."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한 제제에게 잠자리 대신 방울토마토를 한 아름 따서 안겼다.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빠가 최고라며 제제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밭고랑 사이를 날아다니는 잠자리와 방울토마토의 알록달록 색깔이, 닦아준 토마토를 입에 쏙 넣는 제제의 모습이, 가슴속으로 하나하나 날아들어 선명하게 박혔다.


 2018년 여름,


제제가 잠자리채를 들고 집을 나섰다. 뒤따르는 내 손에는 채집통이 들려있다. 그건 내 몫이다. 공원에 도착하고 한참을 휘둘러도 잠자리를 잡을 수 없으니 제제가 슬그머니 잠자리채를 내민다.


제제의 손에 잡은 잠자리를 조심스레 건넸다.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잠자리를 들고 한참을 살피던 제제가 이내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천천히 다가오더니 손을 들어 다시 잠자리를 내민다.
 
"아빠, 잠자리도 엄마. 아빠가 있지?"


가족을 만나야 하니까 놓아주겠다는 제제의 마음에 가슴이 저릿하게 울렸다. 단 한 번 휘둘러 잠자리를 잡았다며 제제에게 으스대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려준 가지에 앉아 미동도 없이 쉬던 잠자리가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제제는 잠자리를 쫓아 마구 달려 나간다. 날아가는 잠자리와 온통 초록빛인 공원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제제의 모습이, 가슴속으로 하나하나 날아들어 선명하게 박혔다.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잠자리에 얽힌 세 여름 사이의 사진들을 훑어보니 마치 로드무비 주인공의 성장을 지켜본 기분이다. 하지만 영화는 비단 제제의 성장만을 그린 것은 아닐 것 같다. 아빠인 나도 그 영화 속 등장인물임엔 틀림없으므로 나 또한 주인공인 제제 곁에서 한 뼘 정도는 쑤욱 자랐을 거라는 확신을 갖는다. 
 
네트워크 세상 속 어딘가, '제제의 집'이라고 이름 붙인 그 폴더 앞에 나는 또 가만히 다가가 설 예정이다. 그리고 즐거운 클릭을 몇 번이고 계속할 것 같다.


거기엔, 제제와 내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16년 여름 제제입니다. 매일 유모차를 끌고 제제와 함께 산책을 다녔어요. 보여주고픈 것이 생기면 어디든 갔습니다. 
가끔 클라우드를 열어 우리가 함께 해온 지난 추억들을 다시금 살핍니다.


2017년 제제인데 조금 더 자랐죠? 제제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제가 찍은 사진이 5만장 정도 됩니다. 


하루 일과를 적은 노트 말고도 제제와의 일상과 그에 따른 감상을 적은 짧은 이야기를 1200번 넘게 써왔습니다.


클라우드에 들어가 지난 사진과 글을 쭉 훑어보다 보면 제제의 성장과정과 그걸 바라보는 제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잠자리를 보고 마냥 좋아하던 돌쟁이가, 이듬해엔 잠자리를 잡아달라고 조르는 꼬마가 되고
또 한 해가 지나니 이제 잡은 잠자리를 놓아줘야 아빠 잠자리, 엄마 잠자리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성장했어요.
지금은 지난 2018년 여름보다 훨씬 더 성장했죠.
그런데 사진과 글에서 또 발견한 것이 있어요. 제제가 성장한 만큼 제 자신도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될 수 있게 앞으로도 더욱 노력할 겁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많이요. 그럼 제제도 더 바르게 성장할 거라고 믿어요.


2019년 여름이 기대됩니다. 우리는 최고의 한 팀이니까 벌써 준비가 다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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