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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05. 2019

# 03. 아빠는 목욕지도사

목욕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제제는 매일 욕실에 들어가기 전, 오늘은 어떤 목욕을 할  생각인지 목욕지도사 마이클에게 귀띔을 한다. 어제는 거품목욕이었다. 
 
따뜻한 물을 욕조에 가득 받으며 입욕제를 풀고 휘휘 젓는다. 기계처럼 빠르고 일관되게 움직이는 왼손이 샤워기를 든 오른손과 만나 거품을 마구 만들어내면, 제제는 마이클의 등 뒤, 욕실 앞을 서성이다가 깜짝 놀라 다가온다. (입욕제 뿌리는 모습은 절대 보여주지 않는 게 핵심이다.) 
 
"아빠가 거품을 만들었어?" 
 
벌어진 입으로 놀라움을 표현 중인 제제를 보며 내 어깨도 조금 으쓱거리기 시작한다. 그런 후에는, 이내 신이 나서 마구 잘난체를 한다. 
 
"스파이더맨 알지? 아빠 손은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만들지는 못해. 대신 이렇게 우리 예쁜 제제를 위해서 거품을 만들 수는 있지." 
 
제제는 신기한 듯 아빠의 손을 꼼꼼히 살핀다. 웨이트트레이닝 때문에 거칠어진 마이클의 손바닥을 보며 굳은살 부위에서 거품이 생긴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얍!!!" 
 
거품을 가득 들어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면서 제제는 기합소리를 내지른다. 마이클에게 거품세례가 쏟아진다. 욕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하아... 언제 다 정리하고 치우지?' 
 
생각은 잠시일 뿐, 계속되는 제제의 공세에 마이클도 열심히 거품을 마주 쏘아댄다. 
 
혈투 끝에 목욕은 끝났다.
부드럽게 몸을 닦아주고, 조심스레 수딩젤을 발라주고, 예쁘게 옷을 입히고, 따뜻하게 머리칼을 말려준다. 비록 내 몸은, 달라붙은 거품과 흐르는 땀에 끈적이고 입에선 바삐 움직이느라 단내가 났지만 그래도 마냥 좋다. 
 
어제, 
마이클은 청소와 정리를 위해 다시 욕실 앞에 선 채, 
내일은 제발 거품목욕이 아니기를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좋은 건 좋은 거고, 빌 건 빌어야 하는 법이다.

매일 색다른 목욕을 원하는 제제입니다. 그에 맞춰주려면 등에 땀이 흐르고 입에선 단내가 나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내 아이 내 손으로 씻기는 기쁨은 다른 것에 견주기 힘들만큼이니까요


제제의 친구들이니 다 내 자식이다 생각하고 이 녀석들도 거품목욕을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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