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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28. 2019

# 68. 선의의 거짓말이었다고 우길 거야


가끔 난감할 때가 있다.
 
뜬금없이 특정 동물이 보고 싶다며 진지하게 말할 때가 있는데, 제제가 언급한 그 동물이란 것이 향유고래나 아프리카 버펄로일 땐 난감하다 못해 등줄기에 땀이 날 지경이다.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를 찾아 뒷산을 헤매던 나는, 전에 살던 동네에선 나름 유명한 사람이었다. 산자락에 아기 능구렁이나 도마뱀, 두꺼비 등이 보이면 집으로 달려와 서둘러 제제를 둘러업고서 집을 나서기 일쑤였다. 청설모나 다람쥐를 만나는 건 예사였고, 제제와 나란히 서서 토끼나 고라니를 지켜본 일도 제법 많았다.

동네 하천에 가마우지가 산다는 걸 알고는, 그걸 보여주고 싶어 꼬박 며칠을 제제와 함께 하천가를 서성인 적도 있다.


매일 제제의 손을 잡고 돌아다녔다. 제제가 무언가를 보고 싶다 말하면, 동물원이든 박물관이든 가리지 않고 다녔다. 그도 아니라면 부지런히 검색한 후에 체험학습장에라도 들렀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어떻게든 제제에게 보여주려고 애를 썼지만 그래도 만나볼 수 없는 녀석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종종 나를 어지럽게 만들곤 했다.


"아빠, 벌새가 날아다니는 거 보고 싶어." 
 
지난여름엔, 그 대상이 벌새였다. 


언젠가 우리는 나란히 앉아 벌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꽃에서 꿀을 빨아먹는 벌새의 모습을 보며 제제는 티브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 제제에게 벌새의 비행 방식을 손짓 발짓을 섞어 간략하게나마 설명해준 적이 있는데 갑자기 그게 떠오른 모양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엔 벌새가 살지 않는다. 뭔가 수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박각시나방이 많이 날아다니는 공원에 들렀다.


언젠가 그 공원에 들렀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박각시나방을 보며 벌새라고 탄성을 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마치 정지한 것처럼, 박각시나방이 공중에 뜬 상태로 꽃에서 꿀을 빨아먹는 모습은 벌새라고 착각하기에 충분하다. 박각시나방, 즐거워하던 그들, 빙그레 웃던 나, 바로 그 기억을 찾아냈다.


"아빠~! 벌새는 정말 예뻐."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 박각시나방이 꽃 사이를 분주히 날아다니며 꿀을 빨아먹는다. 대여섯 마리가 동시에 붕붕 소리를 내며 이 꽃, 저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걸 바라보는 제제의 표정은 그 어떤 선물로도 만들어낼 수 없을 만큼 만족스러움이 가득했다.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는 제제를 보며 박각시나방을 생각해낸 나 자신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봐도 박각시나방은 완벽한 벌새였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그렇게 여름을 지나 가을이 깊어가더니 이제 겨울의 한 복판이다.


"아빠가 벌새를 찾아냈잖아."


지금도 가끔 벌새와 공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제제를 보면 어쩐지 내 코가 피노키오처럼 자라난 기분이다. 신나서 벌새 이야기를 하다 말고는 아빠가 최고라며 엄지를 척하니 내밀곤 하는데 그 엄지를 볼 때마다 언제쯤 박각시나방에 대해 말해줘야 할까 고민은 깊어만 간다. 사실대로 말해주려고 말을 꺼냈다가 제제가 내미는 엄지를 조금 더 즐기고픈 마음에 주춤거린 날도 몇 번 있었다.


"응? 박각시나방이 뭔데?"


"아, 아니야. 아빠가 잠시 착각했어."


에라, 모르겠다. 기왕 호랑이 등에 올라탄 떨어질 때까지 달려보는 거다. 제제에게 들키는 날엔 선의의 거짓말이었다고 박박 우기면 그만이지. 


당분간 박각시나방은 벌새다. 

지난여름, 벌새가 보고 싶다는 제제 때문에 박각시나방이 많이 날아다니는 공원에 갔어요.
막 날아다니다가 하늘에서 고개를 막 돌리는 새 있잖아. 가만히 하늘에 떠서 꿀 빨아먹는 새 말야.
이 공원엔 유독 박각시나방이 많아요. 벌새랑 흡사해서 사람들이 벌새라고 착각하는데 우리나라엔 벌새가 없습니다.
여기저기 공원을 둘러보고 꽃들 틈새를 살펴보다가 또 공원을 둘러봅니다.
오~ +_+ 박각시나방이에요. 예쁘죠? 비행방식이 벌새랑 정말 흡사합니다. 어찌나 날갯짓이 빠른지 벌새처럼 붕붕~ 소리가 나죠.
제제는 뛸 듯이 좋아했어요. 진짜 벌새라고 생각하고 말이죠. 그래, 넌 당분간 벌새야.
아빠, 이렇게~ 날아다니며 고개를 막 돌리는 거 봤지? 그것 봐~ 내 말이 맞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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