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chaelKay Jan 29. 2019

# 69. 햄버거의 첫인상


계절과 기온에 상관없이 늘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 중 하나가 햄버거 전문점이다.  
 
주문 후 대기시간도 짧고 먹기에도 편하다. 심지어 맛도 준수하다. 감자튀김이나 탄산음료에 눈을 질끈 감을 수만 있다면, 버거 단품은 꽤 완성도 높은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브랜드에 따른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버거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드문 편이라 할 수 있다.
 
"제제, 한 번 먹어 볼래?"
 
"싫어."
 
그런데 그 드문 사람들 중 하나가 제제다. 제제는 버거를 무척이나 싫어하기 때문에 가끔 권하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의사를 표하는데 맛이나 취향 때문이 아니다. 제제는 버거를 먹어본 경험 자체가 없으니까.
 
 
2018년 봄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먹기 위해 버거를 몇 가지 사들고 귀가했다. 한 번 맛이나 보라는 의미로 제제가 먹을만한 버거도 함께 준비했다. 아빠가 요리한 햄버그 스테이크를 잘 먹는 아이니까 버거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빠, 얘가 자꾸 나를 놀려."
 
그것이 제제가 느낀 버거의 첫인상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포장을 벗긴 버거를 다시 살펴봤지만 번과 패티 사이로 살짝 녹은 치즈가 보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다. 다시 제제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제제의 표정진지했다.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제제, 무슨 소리야?"
 
"자꾸 혓바닥을 내밀고 메롱 하잖아."
 
그러고 보니 살짝 흘러내린 치즈 모서리가 혓바닥을 내민 모습이다. 나와 아내는 실성한 사람들처럼 웃다가 가까스로 빠진 배꼽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어쨌든 첫인상이 아주 나빴던 관계로 제제와 버거의 사이는 그렇게 멀어졌다.
 
 
지난 토요일,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오랜만에 버거 전문점을 찾았다. 이미 식사를 마친 후라 간단한 디저트가 필요했다. 빈자리에 앉아 무얼 먹을까 궁리하다가 제제에게 슬쩍 물었다.
 
"제제, 버거 먹을래?"
 
"아니."
 
아빠가 요리한 햄버그 스테이크는 없어서 못 먹을 지경으로 좋아하면서 여전히 버거는 단칼에 거절한다. 한 입만 먹어보래도 매몰차게 고개를 돌리는 제제다.
 
첫인상, 참 오래도 간다.


제제는 버거를 싫어합니다.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요. 어릴 때, 버거의 이런 모습을 보더니 혀를 내밀고 놀리는 모습이라 생각하더군요.
지난 토요일에 버거 전문점에 들렀어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죠. 제제, 버거 한 번 먹어 볼래?
아니! 그냥 아이스크림 먹을래. 역시나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옛날에 나한테 메롱메롱했잖아. 약 올리는 거 나빠.
아~~~ 주 마음에 안 들어.
아이스크림이 최고야. (전부터 아무리 설명해줘도 그냥 버거가 싫답니다. 아이들에게도 첫인상 참 중요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 68. 선의의 거짓말이었다고 우길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