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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31. 2019

# 10. 혼신의 연기


2008년,
10년 전 일이다. 
 
보통 선물이라고 하면 리본은 둘째 치더라도 색감 좋은 포장지를 둘러 이른바 '때 빼고 광내는' 일련의 작업 정도는 거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후배가 내게 선물이랍시고 내민 것은 신문 낱장을 빼내 둘둘 말아놓은 뭉치였다. 외견으로만 사물을 평가하는 못된 버릇은 없었으나 다소 서운한 감정이 스치는 것은 막지 못했다. 
 
"형, 풀어 봐요." 
 
후배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나를 살피며 재촉했다. 험상궂게 구겨진 그 '포장 아닌 포장'은 애써 풀 것도 없었다. 그저 쓱 벌리기만 하면 됐으니까. 
 
"이게 뭐냐?" 
 
머그잔보다 두 배 남짓 커다란 컵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이 담겨 있었는데 미간을 좁히고 관찰하는 나를 보며 후배는 빙그레 웃었다. 
 
"그거 버섯이에요." 
 
특별히 지인에게 부탁해서 가져온 버섯이라고 딴에는 제법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나는 얼굴로는 환하게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했으나 마음속으로는 저걸 당장 데쳐서 술안주나 하면 알맞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물 받은 자의 도리까지 잃기는 싫었다. 때문에 입맛을 다시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잘 키워 보마." 
 
버섯과 나는 그렇게 만났다. 
 
작은 생명을 키워나가며 나름의 보람을 찾고, 그 보람 끝에 소박한 수확의 기쁨도 맛 보라는 의미라고 했다.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 한 후배의 따뜻한 마음씨를 고맙게 여겨 나는 버섯 기르기에 제법 몰두했다. 
 
"대충 어둡게 신문지에 싸서 두고
수분만 유지시켜주면 키우기 쉬워요." 
 
버섯을 기르는 손쉬운 방법이랍시고 후배가 일러준 내용은 말짱 다 헛소리에 불과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잘 참았다. 참다가 조심스레 구겨진 신문지를 열어보는 재미가 마치 즉석복권 긁듯이 제법 쏠쏠했다. 그런데 며칠이 더 지나고 나자 버섯의 상태가 영 이상한 것이 버섯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의 이 주 간의 만남을 뒤로한 채, 버섯은 노잣돈도 없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서둘러 저승길로 떠나고 말았다. 
 
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버섯은 대개 균근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뿌리는 발육 조건이 좋아지면 점차 원형으로 뭉치면서 크게 자라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발육 조건이 좋기만 해서는 계속 뿌리만 발달을 하게 되고 결국 노화되어 죽어 버린다고 한다. 
 
지나치게 환경이 좋아 죽은 것 같다는 게 나름 이 계통에 정통한 이의 설명이었는데. 정통하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버섯의 죽음이 나로 인한 게 아니라는 설명만 가능하다면 나는 누구든 전문가로 떠받들 기세였다. 
 
부담을 적지 않게 덜었으니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버섯을 선물했던 후배를 볼 때마다 혼을 담은 연기를 펼치는 것 말이다. 
 
어느 날, 마주친 후배에게 직접 키운 신선한 버섯을 별미로 즐기고 있다고 말하던 순간엔 올해 백상 예술대상은 나에게 줘도 무방하리라 생각하기까지 했다. 
 
"야, 요즘 내가 버섯 키우는 재미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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