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후 Aug 22. 2021

쉬운 UX 서적도 있어야 한다.

너무 전문적이면서 유행을 타는 지식은 본질을 다루기 어렵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의 감동 피드백


출간한 책을 소개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강원도의  대안학교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저자와의 만남?'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모양이다. 디자인 업계에서 UX 디자인이 화두가 되다 보니 학생들에게 소개를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직장인이다. 때문에 외부 활동을 지양한다. 회사 업무만으로도 심신이 지친다. 게다가 회사 월급  수익이 발생하는 일을 경계하고, 외부 활동으로 인해 조직에 위화감을 주는 행위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강의 제안은 5초도 고민하지 않고 거절한다.


이번 제안은 조금 달랐다. 강원도의 한 대안학교, 대상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목적은 책을 읽고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소년에게는 진로에 대한 멘토링을 해주고, 디자인에 무지한 청소년에게는 새로운 직업의 세계를 소개하는 게 목적이다. 하루 정도 고민하고 수락을 했다. 주말의 개인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라 회사용(?)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었고, 꽤나 큰 도서 커뮤니티에 책을 홍보하고 공동 구매할 수 있게 하겠다는 조건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대안학교에 갔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전달했고 강의는 무사히 잘 마쳤다. 참 똘똘한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기억에 남는 학생 한 명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맨 앞에서 열심히 경청하던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강의가 끝나고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니 마지막에 작은 무언가를 건네준다. 코팅이 되어 있는 걸 보고 ‘본인 직접 만든 명함 같은 건가?’라고 생각했다. 근데 자세히 보니 강의에 대한 소감이 담겨있었다. 잠깐 쉬는 사이에-캐릭터를 그리고+메시지를 적고+중요한 부분은 형광펜으로 강조하고+예쁘게 코팅을 해서 가져왔다. 코팅은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어쨌든, 그 학생은 내가 소장할 수밖에 없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나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초등학생, 중학생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 걱정은 시작 전부터 지울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자신 있게 말씀하시길, 이 아이들은 매주 새로운 책을 읽고 저자와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생각보다 수준이 높다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중간중간 나오는 질문의 수준이 중학교 2학년에게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몇 명의 학생들이 와서 이야기하길,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책과는 다르게 '쉽게 읽을 수 있었다'라고 피드백을 준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강의 수준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준비한 대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UX 서적은 어렵다. 공부하듯이 읽어야 한다.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서 들여다봐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UX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쉬운 UX 책을 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우리 엄마도 쉽게 읽을 수 있는 UX 디자인 책'을 목표로 했다. 그러다 보니 버려야 할 내용들이 많았다. 그 내용을 버렸더니 알맹이가 빠졌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알맹이는 너무나 전문적이고 유행을 타는 지식이었다. 그러한 내용은 지속성을 가지기 어렵다. 유행이 바뀌면 버려지는 내용이다. 이 책이 커버해야 하는 독자층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UX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거부감이 없는 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부하는 것처럼 읽는 게 아니라 에세이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자 했다. 유행을 타는 알맹이보다는 본질에 가까운 내용을 전달하고 싶었다. 10년 뒤에도 읽을 수 있는 UX 서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번 일로 인해, 이 책이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걸 확인했다. 어느 블로거의 리뷰에서 '이 책에는 실무의 디테일이 빠져있다'라는 내용을 보고 '맞습니다! 이 책은 실무의 디테일을 일부러 뺀 책입니다. 실무의 디테일을 몰라서 안 쓴 게 아닙니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UX 디자인 실무 방법론을 다룬 책이 아니라, UX 디자인의 본질에 관하여 이야기한 책이다.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나중에는 이 책이 디자인 섹션이 아니라 인문 서적 코너에도 진열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학생이 그려준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든다.


* 참고로 이 강의는 8월 초에 진행되었고 코로나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여 진행되었습니다. 당일 오전 현장에서 자가 검진 키트로 코로나 검사 후 음성 판정을 받고 강의실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참가자 일부만 현장에 드문드문 앉아 있었고, 일부는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퍼소나 VS 페르소나 (feat.BTS R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