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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Feb 12. 2020

아마존 개미고객1의 고백

<아마존 이노베이션>을 읽고, 트레바리 <글로벌 마케터스 클럽> 모임  

최근 끄덕끄덕하게 된 단어는 '쓱세권', SSG 배송이 가능한 지역에 사는 사람인 당신은 운이 좋다. 이걸 누리지 않으면 무책임하다!


아마존의 멤버십 제도는 로열티 프로그램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는데 동의한다. 제프 베조스의 '프라임 회원이 아니면 무책임하다'라는 발언은 광오하게 들릴 수 있지만, 미국에 가면 절감하게 된다. 미국처럼 땅덩어리 넓고, 지역간 인프라 편차가 심한 곳에 살면서, 엄청난 미디어의 유혹을 받으면서 살면서 내마음대로 무엇을 못산다는건 정말 괴롭기 그지없다. 미셸 오바마가 '채소 먹기' 운동을 하면서, 고열량의 가공식품 대신 신선 식품을 찾아 먹어야 한다는 캠페인을 하다가 식품회사의 로비로 '운동을 하자'로 메세지가 바뀐 것도 미국의 유통에서 아마존의 밸류체인이 가지는 파급력을 이해하는데 좋은 단서가 될 수 있다. 빈민지역에 사는 대다수 흑인들이 비만도가 높은 이유가 콜드체인 유통이 원할하게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가공식품만 소비하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시작된 공동체 운동이었는데, 식품 업체들이 반발했고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진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2017년, 뉴욕에서 체류하던 시절 나는 도시빈민이었다. 미국에서 발급한 신용카드도 없고, 반영구적인 주거지도 없고, 대신 택배를 챙겨줄 가족도 없고, 동네에 아는데도 없는데다 운전도 못타는 나는 당황했다. 한국에서 살던데로 집주변에 청과상은 당연히 없고, 밤늦게까지 열려있는곳은 던킨도너츠 밖에 없었다. 24시간 편의점이나 간편결제도 없고, 월마트나 K마트에서 주어담다보면 지하철로는 도저히 가지고 갈 수 없는 무게로 장을봐서 마음먹고 나가야하는 거리에 살았다. 브루클린이었는데도! 그러다가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해서, 일반고객의 '5배'는 거뜬히 썼다.


매일 매일 집앞에 놓여있는 아마존 프라임 박스에서 양말을 꺼내고, 가위를 꺼내고, 비스킷과 커피도 꺼내고,... 업무차 뉴저지에 거주했어야할 땐 더 심각해졌고, 아마존 프라임 없이는 단 하루도 살수가 없었다. 처음엔 필요한 것만 시키다, 미국의 파격적인 '세일'에 중독되서 한국에 가면 이가격에 못살꺼야라며 매일 매일 주문을할 지경이었다. 편리함에 중독되면 '가격에 점점 덜 민감해지고', 미국에 있는동안 프라임 회원비를 뽕뽑기 위해 '매몰비용오류'에 인한 지르기까지... 정말 제프베조스가 사랑하는 개미고객1로 세뇌되었다.




매일 주문을 하다보면, 도착한 박스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


<아마존 이노베이션>을 읽으면서 '플라이휠'의 비유를 통해서 아마존의 사업체들의 공조관계와 파급력을 사업 전략 차원에서 폭넓게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아마존의 '규모의 비즈니스'가 어떻게 권역을 확장해나가는지, '타겟 고객군'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고객을 포섭해서 라이프스타일로 묶어, 생태계에 안착시키는 수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무슨일을 하다보면, 많이 파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때가 있다. 회사가 잘되려면 당연히 고객이 많은게 좋고, 당연히 많이 파는게 이익의 최대화 달성을 이루는게 이치지만, 어느 사업체나 내적/외적으로든, 시장/산업/정부에 의해서든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극도로 소비 규모를 증대하고, 그 사람들이 더 많이, 자주, 더 비싼걸 살 수 있도록 굴려가며 눈덩이처럼 커가는 아마존의 플라이휠은 심지어 고객 '유지'까지 된다.


미국땅을 잠시 밟았는데, 너무 편해서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도 프라임을 해지하지 않고 2년간 그대로 나둔 호구 같은 소비자도 유지하고 말이다...

알게모르게 Audible이나 알렉사를 쓰면서 무료배송의 혜택도 없는데 그대로 나두고 있었고, 웹사이트 어디에도 해지를 찾기도 어렵고 CS전화도 안되서 그냥 카드를 분실신고 해버렸다. 그 25만원 남짓 못돌려 받은게 너무 억울하고, 화나지만, 또 필요하면 난 아마존 프라임에 들어갈 예정이다.


책을 읽으면서 익히 알고 있던 아마존의 위대함(?)의 비밀이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진 않았지만, 고객에 집착하고, 창의적이고 실험적이며, 장기적인 계획을 지향한다는 아마존의 전략이 수많은 사업체와 새로운 서비스들의 흐름에 녹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직 1년밖에 안된 회사여도 대표와 경영진, 투자자들의 생각은 시장상황이나 고객 마음만큼이나 출렁거린다. 그런데 긴 시간동안 아마존 '서점'을 만들면서 그렸던 큰 그림이 해상도가 OLED로, 아예 없던것도 만들어내는 구체화까지 이루어내는 집단지성으로서의 아마존의 조직력이 대단하다. 실상, 변화에 더 잘 적응하고 새로운것을 끊임없이 만들면서 성공한게 아니라, 십년이나 이십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부분에 집착해서 더 '안바뀌도록' 아마존을 인프라화 하겠다는 발상도 배울점이 많다. What Amazon Can't Do (아마존이 할수없는일)을 찾는 것도, 아마존이 못하는 '더 새로운것'을 찾는 것 보다 내가 가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원할 변하지 않는 나의 것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 그런 후에야 아마존의 생태계에 유의미한 플레이어로서 같이 '무한한 게임'에 참여 할 수 있지 않을까?


평범한 마케터로서 당연히(!) 나는 귀가 얇다. 호기심도 많고, 이것저것 실험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제프 베조스의 말 한마디가, 2019년 트렌드, 2020년 트렌드 예측 리포트보다 더 소중하다.


'10년 뒤 무엇이 바뀔지 예측하는 것보다,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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