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는데, 나는 진공 상태다. 이럴 땐 나를 다시 다정한 사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두려움을 개방해야 한다. 요즘 무엇이 걱정인지, 어떤 일이 두려운지 쓴 다음에 살짝 덮어 놓는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써볼 차례다.
직장인이라서, 나는 지금 OO라서 안돼.라고 내 안에 꾹꾹 담아놓은 욕망 타래.
대학교 때 3개월이나 배웠지만 5분도 이야기할 수 없는 언어, 프랑스어.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고 싶다! 최근 <불타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와서 프랑스어의 매력에 빠졌다. 정확히는 아넬이라는 배우의 모든 작품에... 고등학교 때부터 로망이었는데, 정작 파리에서 한 달 살기 할 때는 노느라 바빠서 공부는 뒷전이었다는.
최근에는 보그 파리 유튜브 채널에서 운영하는 파리에 사는 멋진 여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시리즈를 여러 번 돌려 보고 있다. 물론, 16구 한복판이나 센 강 바로 옆에 있는 정원 있는 건물에 사는 건... 프랑스 사람도 웬만한 금수저 아니면 못하지만. 예를 들면, 성북동이나 도곡동 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정도...
https://www.youtube.com/watch?v=Pa-xdOGeRQc&list=PLVRtRwc2n-r6ToS9OapZq9OilGU3zqrbi&index=8&t=18s
스페인에 살 때, 기회가 있었는데도 가지 못해서 아쉬움이 크다. 이렇게 직장인이 돼서 3일 이상 휴가 쓰기도 어려울 줄 알았다면 가고 싶은 곳은 모두 여행을 다녔을 텐데! 열심히 놀았다고 생각해도, 시간이 지나고 취향이 바뀌니 가고 싶은 여행지는 항상 나타나기 마련.
예전 회사 동료가 퇴사 후 멋지게 다녀온 포르투갈의 '포르투' 항구 도시도 가보고 싶고, 유명한 키좀바 댄서 선생님들이 많은 리스본에서 장기 체류하면서 연수도 받고 싶다. 파리나 페스티벌에 댄서로 초청받아서 파티에 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느낌이 너무너무! 좋았던 사람들은 다 포르투갈 남자였다.
'파두' 공연도 직접 보고 싶다. 알파마 지구에서 찍은 예전 영화의 장면들도 거닐어 보고. 스페인보다 훨씬 싸지만 풍미가 있는 와인, 요리, 햄을 먹고 싶다. 벌써부터 난 포르투갈에서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 이메일을 보내는 친구가 있는데, 한국에서 작가 레지던시에서 일 년 동안 있었던 사운드 아티스트다. 서로 엇갈려서 못 만난 지 5년이나 되었네... 베를린에서 같이 학교 다녔던 작가들도 집값 & 날씨 문제로 리스본으로 이주 많이 했다. 그래서 더욱 가고 싶은 도시 중에 하나!
https://www.youtube.com/watch?v=DGyPV8rEUzE
나는 멕시코랑 인연이 많다. 멕시코에 있는 갤러리와 5년 정도 일했었고, 멕시코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 가브리엘 오로즈코를 석사 논문으로 오랫동안 준비했다.(통과는 못했지만) 테낄라도 좋아하고, 멕시코에서 오신 살사 선생님에게 처음 살사를 배웠다. 멕시코 출신 댄서 친구들도 많다. 심지어 뉴욕에 있을 때는 나만 빼고 여름휴가를 모두 멕시코에 다녀와서, 넥스트 베를린이라며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멕시코 시티에 꼭 가봐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리고 나는 프리다 칼로를 사랑한다. 리베라, 시게로스, 오로즈코의 벽화도 사랑한다. 이번 2월 뉴욕에 갔을 때, MoMa에서 프리다 칼로와 시게로스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미드타운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타코도 영접해보고... 멕시코에 대한 갈망은 높아져만 간다.
우선 멕시코에 가기만 하면, 예전 동료들을 다 그러모아서 전시도 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사람도 많이 만나야지! 그리고 오하까, 칸쿤 여행을 다녀와야지.
미술 프로덕션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미술 기관에서 '프로듀서'라고 부른다. 또는 프로덕션 매니저, 프로젝트 매니저, 스튜디오 매니저 등 직책은 다양하지만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경력에 따라 수입도 천차만별이다. 반면, 국내는 대형 전시를 위한 일시적인 인력 충원을 위해 전시 프로덕션만 담당하는 '코디네이터'를 계약직으로 선발하거나, 큐레이터나 작가의 '어시스턴트'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사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학부나 석사학위를 졸업하고, 영어를 잘하는 전공생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미술 전시 프로듀서는 흥미로운 직업이다. 영화 프로듀서, 방송국 PD, 출판사 편집자, 신문사 기자, 무대 연출가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n개의 프로덕션을 매니징 하는 경험을 하기 때문. 현대미술이 변해서 그렇다. 전통적인 조각, 회화를 수집한 컬렉션을 중심으로 연구와 전시를 진행하던 근대 미술관이 동시대 제도 기관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설치미술,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아트, 커뮤니티 아트 등 다양한 매체를 망라하고 제작을 직접 의뢰하기도 하는 대형 프로덕션이 전 세계 미술관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CES 같은 행사가 미국,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매달 열리니 국제적 브랜드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작가와 기관들은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매번 신작이 발표되고, 고가에 거래되기도 하는 미술시장은 90년대 말 닷컴 버블처럼 확대되기 시작하여, 2008년과 연이은 경제 불황으로 타격을 받은 후 수익모델을 찾아 다양한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 갤러리, 큐레이터를 상대하는 전문직으로 생겨난 직업이 프로듀서다.
출간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미술 전시를 하면서 느꼈던 경험을 동료들과 e-book으로 펴고 싶다. 국내는 파이가 작아서 지속적으로 전시 프로덕션만 하시는 분이 많지 않다. 관리직이 되거나, 학예사가 되면 전시 프로덕션 실무와 멀어지고 또다시 1~3년 차 계약직만 무한히 반복되는 사이클에 유의미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 나에게도 선배가 있었다면, 커리어 패스라는 걸 상담할 수 있는 롤모델이 있었다면 시야가 더욱 넓어졌을 것이고 '나'를 전문가로서 협상하기에도 유리했을 것이다.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었는데.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일은 실컷 해보고, 아르헨티나 억양도 시도해보고, 탱고도 몇 년 춰보고... 준비 100%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이른 판단이었다.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데, 3개월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하던 일을 어느 순간 놓아야 하는데 그 시기를 여태껏 못 찾았다. 꼭 아르헨티나로 가야지. 최대한 오래 체류하면서 남쪽에 빙하도 보고, 북쪽 경계에 있는 아마존 지역도 가보고, 내륙의 초원과 와이너리도 들려보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도시 생활도 즐기고, 로사리오에 친구들 집 놀러 가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왓츠앱이나 페이스북으로 가끔 보는 소식에도 아르헨티나는 불안정하다. 먹고 즐기러 가는 곳은 관광객에게만 허락된 잠시만의 즐거움일 것이다. <두 교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근대사를 다시 보면서, 블록체인 업계에서 날뛰는 아르헨티나 거래소 시세를 보면서... 이 낭만은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그런 건지, 실제로 가면 다를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
보르헤스의 나라. 나의 탱고 & 미술 친구들의 나라. 마음의 고향처럼 맥락 없이 선명하고 반복되는 이미지로 나를 지탱해주는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서 탱고도 다시 추고, 마음껏 수다 떨고. 원 없이 자연을 보고, 책도 읽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다시 요가를 시작했다. 나는 2014년 지하철을 잘 못 타서 서울이 아닌 곳에서 잠에 깬 나는 '가야트리(गायत्री)' 만트라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시작했다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꾸준히 요가를 했는데, 매일 아침마다 수련하면서 들었던 만트라가 가야트리였다. 혼란과 의심, 방향감각을 잃고 회의에 지쳤을 때 암송하면 무지를 거두고 빛이 밝은 것처럼 깨닫게 되리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서울에 홀로 올라가는 갓 스무 살이 된 딸에게 준 어머니의 선물이기도 했다. 노래 CD랑 만트라를 인쇄해서 코팅을 해주셨는데 지갑이나 책갈피로 두고 쓰면서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눈을 뜨고 있으라."
괴로워도, 의심이 가도 눈을 감아 버리면 안 된다. 서울살이 하면서 정신 차려보니 나를 찾을 수가 없어 문득 무서워졌을 때, 이 구절을 문신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회사 점심시간에 나가서 타투를 하고 왔다.
처음 해보니 4시간이나 걸릴 줄도 몰랐고, 등줄기에 길게 해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매일 연고도 발라주면서, 척추를 따라 만트라를 새겼다. 요가를 시작하고 나니 다시 마음이 편해졌다. 다시 나를 찾은 느낌이 들어서. 앞으로도 요가는 그만두지 말아야겠다.
버킷리스트가 아니라 욕망 리스트라고 말을 하고 나니, 어딘지 여유로워진다.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택하는지 순전히 나에게 달려있어서 기분도 좋다. 여섯 개 중에 하나는 이미 이루고 있어서. 멀리 여행을 떠나는 건 당장 직장인으로서 어렵다. 나의 평화를 찾고, 밝게 유지하는 부지런한 일들을 하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돈이나 시간을 쓰면 그만인 직장인 버킷리스트보다, 이리저리 날뛰는 욕망을 갈무리하는 건 좋은 선택이었다.
2020.02.26
킴